인문학 발전과 문화유산인 지산재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계기 마련

사단법인 빛고을고운최치원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광주향교 유림회관 2층에서 전남대 김경호 교수를 초청, ‘고운 최치원의 문묘종사와 지산재 제고를 위한 세미나’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지난 2019년 고운학 한·중 인문포럼에 이어 2번째 마련한 이번 학술세미나는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00여명의 시, 도민이 참여 성황리에 행사가 성료되었다.

신라시대의 학자로써 문장가로써 이름을 널리 알린 최치원 선생은 문란한 정치를 해결하기 위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조를 올리는 등 국가의 명운을 위해 헌신해왔다. 특히 유학자였지만 불교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승려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선생은 말년에는 해인사에서 지냈으며 주요 저서로는 <계원필경>,<사륙집> 등을 집필한바 있다. 행사를 주최한 (사)기념사업회와 경주최씨 호남종친회는 이번 세미나 추진 배경에 대해 고운학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인문적 자원인 지산재(광주시 남구 양과동에 위치한 유형문화재 10호)를 교육공간 및 기념공간으로 새롭게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자리를 마련하였다며 전남대 김경호 교수의 특강과 질의응답 시간 등으로 알차게 구성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고 밝혔다.

강의를 진행한 김경호 교수는 최치원의 뿌리인 경주최씨를 시작으로 문묘와 문묘배향의 중요성, 그리고 그 첫 번째 인물이 왜 최치원이었는지, 최치원의 문묘종사가 가능했던 것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가문의 지속적인 흔적인 지산사와 지산재의 활용과 역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더불어 이번 학술세미나에서 세 가지 논점을 주목하여 논의가 진행되었다. 첫째, 한국 사회의 사상문화 전통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의 “문묘종사”와 관련한 문제, 둘째로 광주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주최씨 일족들의 “최치원”에 대한 존숭과 추모의식과 관련한 문제, 셋째로 최치원의 문묘배향의 첫 번째 인물 이였던 이유에 관해 논했다. 여기서 김교수는 최치원의 인문 계보로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했던 사촌동생 최언위와 최승우를 소개했다. 최언위는 왕건의 휘하로 들어가 한림원령평정사를 지냈고 그 자식들은 고위직에 등용 되었다. 최승우는 왕건과 대적했던 견훤의 막후에서 활동하였다 이들을 ‘경주 3최 천재’라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지산재의 역할과 활용 방안에 관련한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이를 통해 최치원 선생은 유교적 학술에 공헌하고 타의 귀감이 됨은 물론이고 계원필경을 비롯해 많은 저사와 유교적 업적을 볼 때 문묘배향의 첫 번째 인물로써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경주최씨 씨족의 시조인 최치원의 영정을 모셨던 지산사가 확장을 통해 교육공간의 의미까지 더한다는 것은 이곳이 경주최씨 일족만을 위한 공간을 넘어서 지역사회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추론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로컬과 로컬 그리고 빠르게 변화되는 트랜스 로컬 시대에서 지산재는 앞으로도 지역의 힘과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화합을 도모하는 공간으로써 그 플랫폼적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이번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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