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장발장이 없는 따뜻한 사회 구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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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장발장이 없는 따뜻한 사회 구현을 위하여
  • 정이우 기자
  • 승인 2020.05.29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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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법률사무소
김태환 대표변호사
김태환 대표변호사

동일법률사무소 김태환 대표변호사는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실된 변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변호사로서 여러 의뢰인들을 만나다 보면 선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졌는데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범죄의 길로 들어서거나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의뢰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면, 또 성장과정에서 좀 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송사에 휘말리는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항상 억울하고 안타까운 의뢰인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의뢰인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부친의 사업실패로 어린 시절부터 일찍 가난을 경험하며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김 변호사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고엽제 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오랜 지병이 있어 김 변호사는 대학 시절부터 변호사가 되기까지 아르바이트를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의지를 꺾는 가난으로 인해 세상을 어둡게 본 적도 있으나 김 변호사는 군 복무를 마치고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자신이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교 입학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등록금이 절실하던 시기에 학교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대학원 졸업시까지 계속하여 경비 보조원 등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일찍 철이 들어 상황을 긍정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배려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김 변호사는 비록 집안의 경제적 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학교와 사회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

학교와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김 변호사는 어둡게만 보았던 세상을 밝게 볼 수 있었고, 사회적 약자들이 제도와 정책을 통해 자신처럼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다면 평생의 보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서울특별시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으나 공무원 생활은 김 변호사가 생각했던 이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결국, 김 변호사는 공무원 퇴직을 결심하게 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시기에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게 되면서 장발장과 같이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늦은 나이에 인생의 진로를 선회하는 큰 결정을 한 김 변호사는 3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변호사의 꿈을 포기하겠다는 자신과의 굳은 약속을 하였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며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 시험 합격 후 바로 ‘동일법률사무소’를 개소하였고, 자신이 뜻한바대로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 현장인권상담위원, 국민권익위원회 전문상담위원, 도봉구·동작구 옴부즈만,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인,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공익활동들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고 있다.

김태환 대표변호사 인터뷰

“제 변론을 통해 의뢰인들의 권리가 보호되고 의뢰인들이 세상은 살만하고 따뜻한 곳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 이상의 보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사명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도의 사각에서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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