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통치체제를 규정한 성문법전 ‘경국대전’
조선의 통치체제를 규정한 성문법전 ‘경국대전’

 

탕평이라 함은 사전적 의미로 싸움, 시비, 논쟁 따위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을 말한다. 특히 조선시대 영조 시기에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각 당파에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던 정책을 일컫는다. 이러한 정책을 뒤집어 본다면 조선시대 영조 이전에는 탕평 정책이 없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시대 쌍성총관부 지역(지금의 함경남도 영흥)에서 성장한 변방 세력이었다. 지방 호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홍건적 두목의 목을 베었으며, 여진족의 난을 평정하는가 하면 극악한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는 등의 활약을 통해 당시의 수도인 개경에 진출하였다. 이성계는 17세 무렵 2살 아래의 신의왕후 한씨(당시 15세)와 혼인을 하여 개경에 진출하기 전 이미 6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이성계는 자신의 능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개경에 진출하였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뿌리내린 고려시대 권문세족들이 활동하고 있는 중앙정치 무대에서 그의 성장은 한계가 있었다. 변방 출신으로 권문세족의 배경이 필요했던 이성계는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康允成)의 딸 신덕왕후 강씨와 정략적인 혼인을 하게 된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 보다 21살 연하였다. 이성계는 강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신덕왕후 강씨 사이의 장남인 무안대군 이방번이 태어났을 때(1381년)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5남인 태종 이방원의 나이는 이미 18세의 성인이 되어 있었다. 개경 진출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던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개국하게 된다. 그런데 첫째 부인 신의왕후 한씨는 조선 개국 전인 1391년 9월에 병으로 사망한다. 한씨의 사망으로 새로이 열린 조선의 왕국에는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가 왕비로 책봉되어 정비가 되었다.

조선 개국이 이루어진 시점에 이성계의 나이는 58세로 당시로서는 노년에 접어 들어 있었다. 때문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세자 책봉 문제가 제기되었다. 개국 전 해에 서거한 첫째 부인 한씨와의 사이에 6남 2녀가 있었고, 현 왕비인 강씨와의 사이에는 나이 어린 2남 1녀가 있었다. 세자 책봉은 현재 중전으로 있는 강씨의 첫째 무안대군 이방번을 제치고 둘째인 의안대군 이방석에게 주어졌다. 이방석의 나이 11세 때였다. 첫째 부인 한씨의 자손인 정안대군 이방원의 눈에는 첩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방석이 세자가 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일으킨 왕자의 난을 통해 1398년 강씨의 두 아들 이방번과 이방석은 사망하였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이방원은 조선의 제3대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 겪은 사건의 영향인지 태종은 즉위 15년(1415년)에 서얼금고령(庶孽禁錮令)을 공포한다. 이는 서자와 얼자들의 관직 진출을 근원적으로 제한하는 법령이다. 서얼금고령은 성종 2년(1471년) 반포된 조선 경국대전에 성문화되었다. 이렇게 규정된 서얼금고령은 갑오개혁이 추진된 1894년까지 지속되었다.

서얼(庶孼)이란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 첩의 자식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첩의 신분이 양인이면 서자(庶子)가 되고, 첩의 신분이 천인이면 얼자(孼子)가 된다. 이들 신분을 가진 서자와 얼자는 조선시대를 통해 관직 진출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이들 서얼 출신들이 공식적으로 관직에 진출한 최초 사례는 정조 3년(1779년) 규장각에 설치한 ‘검서관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관직은 특별히 서얼 출신들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명문가의 서얼 가운데 학식과 재능이 탁월한 자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1779년에 임명된 초대 검서관으로는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서이수(徐理修) 등이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탕평책이 현 시대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권을 잡은 정당과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요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서얼금고령’을 되뇌어 본다. 재능과 능력을 갖춘 인재라면 학연, 혈연, 지연, 정당 등의 한계를 넘어 사회와 국가에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탕평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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