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 김홍도 (1745-?)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신윤복이 풍속화만 그린 것과는 달리 김홍도는 산수화, 인물화, 사군자, 초상화; 기록화 와 불화의 판화 등 모든 장르의 대가였다.
우리는 그의 호로 단원(檀園)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외에 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첩취옹(輒醉翁) 등의 호가 있다.

그가 그린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는 당나라때 술과 시를 사랑했던 여덟명의 시인, 즉 음중팔선 중의 하나인 하지장의 술취한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는 그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하지장은 말 탄 것이 배 탄 것 같더니만
 결국은 눈앞이 가물가물, 우물에 빠져 그대로 잠들었다네'

이 그림은 김홍도가 술을 마시고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한쪽에는 갑자년(1804) 동지가 지난 후 단구(단원)가 화원이자 친구인 박유성의 집 서묵재(丹邱寫宇瑞墨齎)에서 그렸다고 명기돼 있다. 연말에 친구들과 한잔하고 그렸음을 암시한다.
술기운과 함께 단숨에 그렸으며 붓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낙관은 두개를 남겼다. 신홍도(臣弘道)와 취화사(醉畵士)이다.

김홍도를 아끼던 정조가 죽자 노론은 정조가 아끼던 김홍도에게 치욕을 안겨줬다. 노론은 환갑의 김홍도를 아들이나 조카뻘인 어린 후배 화원들과 함께 나란히 실력 테스트를 받게 했다. 그 서글픈 마음에 김홍도는 술을 마시고 자신을 아껴주던 정조를 생각하며 그림에 '신홍도(臣弘道): 신하 김홍도가 그렸습니다' 낙관을 찍지 않았을까.
또한 단구라는 호를 글에는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낙관은 취화사(醉畵士)를 사용하였다. 하지장이 아니라 실은 술취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김홍도는 술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술을 사랑하였다.

 

어느날 마음에 드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매화를 본 김홍도는 2000냥이라는 거금이 없어 사지 못하고 있던 차에 마침 그림을 그려달라는 사람에게 3000냥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 후 매화주인에게 바로 2000냥을 지불하고 그 매화를 구매하였다. 그리고 술집에 800냥을 주고 잔치를 준비하라 하고는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다. 집에는 생활비로 3000냥중 200냥만 보낸 것이다.
친구들이 이 매화의 가치가 2000냥이 되냐고 묻자 김홍도는 '매화는 군자의 벗이다. 군자가 벗을 얻는데 속세의 가치로 평가할 수 있을까.' 라고 답하였다.
꽃과 술은 문인에게든 화가에게든 필수 아이템인 것이다.

김홍도는 청나라를 통해 익힌 것으로 보이는 서양 화법을 과감하게 도입해서 색채의 농담과 명암으로 원근감을 드러낸 훈염기법을 도입했다. 거기다 이전 화가들이 그리지 않았던 백성들의 삶을 그린 풍속화들을 많이 남겼다. '주막'이나 '점심', '타작'같은 작품을 보면 술과 함께하는 평범한 백성들의 그림을 그렸다. 이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중인신분의 김홍도는 정조의 비공식 홍보 담당으로 당시 국가주도의 미술사업은 모두 기획하고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정조의 통치철학을 미술로 표현하여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는 사회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김홍도는 그림에도, 글에도, 사회적 책임에도 다재다능하였다. 하지만 그런것을 모두 떠나서 그의 풍속화들을 보면 그는 휴머니즘으로 뭉쳐진 휴머니스트였음에 분명하다.

 

작가소개 :
미술과 술 컬럼니스트 신종근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1,2권 저자
유미주의 화가들 모임인 클럽 유미주의 자문위원
instagram @jshin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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