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조선시대에 그린 제갈량의 초상 두점을 보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갈무후도'와 '제갈무후화상찬'으로 '제갈무후도'에는 1695년 5월에 숙종이 직접 짓고 쓴 제갈량을 칭송하는 시가 남겨져 있으며 '제갈무후화상찬'은 제갈량의 사당에 안치하려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무후(武候)는 제갈량의 작위다.
그외에도 우리나라에 의외로 제갈량의 초상이 많아서 그 이유를 찾아보게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제갈량 숭배가 유행이어서 사당건립과 초상제작 그리고 그가 쓴 출사표가 상당히 확산되었다.
임진왜란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고마움과 우리에게 굴욕을 준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한나라부터의 중국의 정통성 계보를 잇는 촉나라의 충신인 제갈량에 대한 숭배문화가 널리 퍼졌다.
사실 청나라 오랑캐들을 정벌할 제갈량같은 지략가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숭배문화가 발생하였을 것으로 보고있다. 

서울에는 지금도 제갈량의 사당이 2개가 남아있다. 남산의 와룡묘와 보광동의 무후묘이다.
최초의 제갈량 사당은 선조때 평안도 영휴현에 설립되었고 그곳에 최초의 제갈공명상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1902년에 도둑을 맞았다.
참고로 현존 가장 오래된 제갈량화상은 원나라시대인 1320년경에 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氏,갈氏,제갈氏는 모두 제갈량의 후손이라고 한다.
제갈량의 증손주가 나라가 망한후 신라로 망명하여 거주하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9세기초에 그 후손이 다시 신라로 귀화하여 남양제갈氏로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았다.
현재도 대구 달성과 전남곡성에 제갈氏 집성촌이 있으며 두곳 모두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인 무후사(부의당)도 있다. 

중국 산동성의 제갈량 집안에서 생산되며 제갈량축제에서 공식적인 제사술로 이용되는 '제갈량가주(諸葛亮 家酒)'가 2019년부터 우리나라에 '제갈량 코리아'를 통해 정식 수입되고 있다.
중국에서의 제갈량의 인기가 워낙 좋아서 제갈량 이름이 붙은 술만도 약 250여개라고 한다. 그래서 오랜기간 상표권 분쟁이 있었고 최종적으로 산동제갈량가주업유한공사의 '제갈량가주'만이 '제갈량(諸葛亮)'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외 유통중인 제갈량주를 보면 한자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술의 별칭이 총명주, 진급주라니 그또한 재미나다. 

이 술이 우리나라의 제갈량 사당의 제주로도 사용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있는 제갈량의 후손들이 이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시고 있을까.
어느날 문득 제갈량가주 한병을 들고 남산의 와룡묘에 가봐야겠다. 

 

작가소개 :
미술과 술 컬럼니스트 신종근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저자
유미주의 화가들 모임인 클럽 유미주의 자문위원
instagram @jshin_korea 

#미술과술 #유미주의 #클럽유미주의 #제갈량 #제갈공명 #제갈량가주 #와룡묘 #무후묘 #제갈무후도 #제갈무후화상찬 #신종근 #우리술어디까지마셔봤니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