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 정부는 6·25 전쟁 중 알려지지 않은 공적을 인정하여 4명의 참전자에게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 4명의 전쟁영웅은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매튜 리지웨이 대장 및 한국의 백선엽 대장과 바로 김동석 대령이다. 3명의 전쟁영웅이 4성 이상의 장군이지만, 김동석 영웅 만은 대령 신분으로 영웅 칭호를 받았다. 이에 김동석 영웅의 숨겨진 이야기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동석은 1923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조부는 함경북도 명천지역의 유력인사로 상당한 부자였다. 그러나 일제 식민통치 하에서 생존을 위해 소련(현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김동석은 자연스레 러시아어를 익혔고, 1930년부터 러시아는 고려인을 중앙아시아 등의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1937년까지 시행하였다.

김동석은 15세가 되던 1937년 강제 이주를 피해 하얼빈에 정착한다. 부유했던 집안 환경 덕분에 하얼빈에서 목재상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중국 지역인 하얼빈에서 사업을 하며 중국어와 일본어로 생활을 하였다.

<중국 장개석 총통과의 인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하면서 만주지역의 통치권에 대한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1946년 초 중국국민당 군대의 총수 장개석과 당시 소련 홍군사령부 대표가 하얼빈 통치권을 놓고 회담을 하게 되었다. 이 회담에서 김동석은 장개석 대표의 통역관으로 활동하였다. 이 통역을 계기로 장개석은 김동석을 황포군관학교에 추천해 주었다. 황포군관학교는 중국국민혁명에 필요한 군사간부를 양성하기 위하여 1924년 중국 광저우(廣州)에 설립한 군사교육기관이었다. 특히 장개석은 김동석이 러시아어-일어-중국어에 능통하다며 ‘첩보’분야를 전공시키라고까지 추천에 넣었다고 한다.

이렇게 맺어진 장개석과의 인연은 1949년 장개석이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전해 갈 때, 김동석을 동행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김동석은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육군사관학교 8기생이 되었고, 6·25 전쟁에는 육군 중위로 참전하였다. 전쟁기간 중 첩보분야에서 특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두 차례나 특진하여 소령 계급으로 육군첩보부대(HID) 36지구대장을 맡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17년생으로 김동석 보다 6살 위였다. 잘 알고 있듯이 박정희는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사관하교 57기로 1944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만주국 관동군 포병 장교로 근무하였는데, 해방을 앞둔 1945년 7월에는 중위로 진급하여 중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박정희는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중대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중대장의 신분이었다. 중대원들을 데리고 당시 기차역이 있던 신경역(현재의 장춘) 광장에서 서성거리며 중대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마침 그곳에 있던 김동석이 이들과 우연히 조우했다. 일본이 패망하였고, 중국땅에서 한국말을 주고받는 일행을 발견한 김동석이 반가운 마음으로 이들과의 대화에 끼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국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다는 말을 듣고서는 서슴없이 한 다발의 돈을 박정희에게 건네주었다. 당시 김동석은 목재상으로 하얼빈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다. 이 돈으로 박정희는 중대원들을 데리고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후에 우리의 육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로 만난 김동석과 박정희는 해방 직후 신경(장춘)역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다만 1961년 박정희 주도로 진행된 5·16 군사혁명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김동석은 군인의 본분에 충실하겠다면서 동참하지 않은 것이 두 사람 인연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김동석은 자신을 소개할 때, “김일성의 ‘김’, 모택동의 ‘동’, 장개석의 ‘석’, 김동석 이외다”라고 즐거이 말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요 인물들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었던 김동석 6·25 전쟁영웅.

6·25 전쟁 당시 김동석의 첩보활동을 누구보다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던 맥아더 원수는 그가 소중하게 지니고 있던 망원경을 김동석에게 선물로 건네주었다고 한다.

어떤 나라는 전쟁에서 커다란 공을 세운 군인을 ‘영웅’으로 떠받들며 존경의 마음으로 기억하려 하는데, 우리는 김동석 같은 군인의 공로에 너무도 인색한 것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참고로 김동석 영웅의 친 딸은 가수로 널리 아려져 있는 진미령씨다.

중국어로 ‘김(金)’은 ‘진’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중국화교학교를 나온 ‘김미령’이 ‘진미령’으로 불린 까닭이다.

2009년 서거한 김동석 영웅의 영면을 빈다.

맥아더 원수가 애용했던 망원경, 이를 김동석에게 선물로 주었다(사진은 네이버에서 캡처하였음)
맥아더 원수가 애용했던 망원경, 이를 김동석에게 선물로 주었다(사진은 네이버에서 캡처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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