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족들과 함께 일본 훗가이도(北海道)를 다녀왔다.

훗가이도는 본래 토착주민인 아이누족의 터전으로 ‘아이누의 땅’이라는 뜻의 에조치(蝦夷地)로 오랫동안 불렸었다. 19세기 중후반까지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훗가이도 대부분 지역이 인구가 적고 개발이 더딘 불모지였다. 그러다가 1868년 메이지 유신시대가 되면서 1869년 에조치를 행정망에 대입하는 명칭인 ‘훗가이도’로 개칭하였고, 중심도시로 삿포로를 건설했다. 1870년에는 삿포로(札幌) 개척사(開拓使) 가설 청사가 준공되었고, 1873년에는 개척사 본청사를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훗가이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된지 150년이 되었다.

이러한 훗가이도 역사 속에 훗가이도 후라노 지역의 라벤다 농장은 의외의 관광지로 보였다. 남프랑스의 특산품으로 알려졌던 라벤다가 훗가이도의 후라노에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못 뜻밖이었다. 훗가이도에서 라벤다 재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기록에 따라 1937년에 시작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기록은 1942년에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믿을 만한 기록에 의하면 1937년 소에다 향료의 창업자가 화장품의 원료로 프랑스 발랑솔에서 라벤다 씨앗 5kg을 입수하여, 치바·오카야마·훗가이도의 각 농업시험장과 소에다 향료 삿포로 공장에서 시험 재배를 실시하였다는 것이 최초이다. 1년 후 삿포로에서의 시험재배가 성공적으로 결론지어지면서 삿포로 교외에서 라벤다 재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식량증산 계획에 따라 라벤다 재배는 중단되었고, 최소한의 우량 품종을 선발하고 보존하여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재배를 시작하였다. 1932년 후라노에서 태어난 토미타 타다오(富田忠雄)는 21세때인 1952년 라벤다 밭을 보게 되었고, 농업인의 꿈을 키웠다. 토미타는 결혼 후 온 가족이 라벤다 농장을 가꾸었는데, 1958년 10a로 시작했던 라벤다 밭이 1965년에는 120ha로 확장되었다. 이후 1970년 라벤다 밭은 230ha로 확장되면서 250여 농가가 참여하게 되었고, 라벤다 오일 5t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72년 합성오일 등장과 무역자유화로 라벤다 오일값이 폭락하자 농장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위기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라벤다 농장을 지키려 했던 토미타는 대를 이어 라벤다를 재배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1976년 일본 국철 달력에 후라노의 라벤다 밭이 실리게 되고, 국민 드라마 ‘북쪽 나라에서’라는 드라마의 촬영지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면서 라벤다 꽃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후 후라노의 라벤다는 농업 작물이 아니라 관광용으로 재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후라노의 라벤다 농장에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토미타 타다오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먼저 라벤다 농장 입장료를 받지 말아라. 농장을 찾은 관광객이 누군가에게 추천을 할 때에는 입장료는 마음에 부담일 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 하려면 입장료는 일체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음으로 주차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후라노는 삿포로에서도 자동차로 2시간 이상 달려와야 하는 곳이므로 주차요금도 관광객들에게 부담일 수 있어서란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면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라벤다 농장을 찾아올 것이며, 관광객들이 몰려오면 어떤 형태로든 후라노 지역에서 지갑을 열어서 후라노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단다. 실제로 필자가 후라노 라벤다 농장을 찾았을 때 입장료도 주차료도 부담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토미타 타다오의 원칙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사람들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으로 느껴진다. 토미타 농장은 1990년 남프랑스 라벤다 생산조직으로부터 ‘라벤다 백작’ 칭호를 받았다. 토미타 농장의 주인공 토미타 타다오는 2015년 7월 4일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하였지만, 2022년 남프랑스 생산조직으로부터 ‘라벤다 사령관(司令官)’ 칭호를 받았다.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하며 라벤다 농장을 포기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일궈낸 토미타 타다오의 정신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의 여러 지역에서 우리 만의 독특한 개발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라벤다 농장을 찾은 관관객들 (2023년 7월, 필자 촬영)
다양한 꽃들이 재배되고 있는 토미타 농장 (2023년 7월,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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