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북한과 일본이 대화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5월 27일 일본인 납북자의 귀국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북일정상회담 조기 실현을 위해 북한과 고위급 협의를 갖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런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들은 북한의 박상길 외무성 부상은 담화를 통해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담화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직접 맞선다는 각오로 납북 문제에 임해왔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고자 한다"며 대북 대화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북한과 일본이 대화를 향한 탐색을 본격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사실 북한과 일본의 수교 협상은 지난 1991년 시작되었지만, 그 디딤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놓았다. 지난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7·7 선언을 통해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북일 수교협상은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 등이 1990년 9월 평양을 방문해 당시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만나 양국관계 정상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전기를 맞았다.

다음해인 1991년 1월 일본 정부 대표단이 방북하며 시작된 국교 정상화 교섭은 8차례 진행됐으나, 92년 12월 북한측이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로 알려진 이은혜(일본명 다구치 야에코)문제를 핑계로 교섭을 중단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양측은 그뒤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전 부총리가 95년 3월 연립 3여당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하면서 교섭 재개에 합의했다.

양국은 그후 30만t의 대북 쌀지원과 일본인처 고향방문 논의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나 1997년 2월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에 납치됐다는 일본 경찰 조사가 공개되면서 다시 악화됐다. 2000년 4월 국교 정상화 교섭이 7년 5개월만에 재개되면서 북일수교 협상이 11차례 진행됐다.

2002년 4월 양국은 북일적십자회담에서 납치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조사를 약속했고 브루나이 외상회담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기본적 윤곽에 대해 합의한 뒤 8월 평양에서 외무성 국장급회담을 개최했다. 양측은 이후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4개항의 평양선언을 채택하였다. 이때 합의한 4개항은 ①국교정상화 회담 추진, ②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③유감스런(납치 등) 사태의 재발 방지, ④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신뢰에 기초하는 협력관계 구축 등이다.

그러나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북일 정상회담 1개월 후인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하면서 양국관계는 난항을 겪었다. 게다가 납북된 일본인 중 8명이 사망하고 5명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본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북한 당국은 일본인 납북자에 대하여 2002년 10월 2주간 일본여행을 허용한다는 구실 아래 생존자 5명에 대해 일본 귀국을 허용했으나, 일본 정부는 납치 사실 자체가 범죄행위라며 이들을 돌려 보내지 않았다.

북핵 위기와 일본인 납북자 문제로 악화된 일본 여론에도 불구하고 2004년 5월 22일 고이즈미가 재차 평양을 방문하여 제2차 북일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선언 이행을 약속했지만,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2차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1차 정상회담 후 일본 여행을 허용했던 5명의 일본인 납북자 북한 잔류 가족을 일본으로 송환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납북된 일본인 생존자가 5명이라고 했지만,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본인 납북자는 2018년 10월 기준으로 17명이기에 일본은 나머지 12명도 일본으로 돌려 보내라고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일 수교협상에 있어 북한과 일본은 서로의 입장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북한은 북일 관계의 근본 문제는 일본이 지난날 북한 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을 청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840만 여명의 일제강제연행, 20여만명의 일본군 위안부 등 중대 인권피해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자고 한다. 지난 1990년대초 북한은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당시 60억~100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향후 북일 협상에서 북한은 상당액의 배상을 요구할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최근들어 북한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북일 협상에 임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과거사 배상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안일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02년 10월 일본으로 돌아온 5명의 납북자를 북한으로 돌려 보내지 않으면서 모든 납북자를 일본으로 돌려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2013년 1월 25일 일본인 납북사건을 해결하고자 ‘납치문제대책본부’를 세웠다. 납치문제대책본부는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납치문제담당대신, 내각관방장관, 외무대신이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 지난 5월 7일 한국을 방문했던 기시다 총리가 그의 옷깃에 푸른색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이 배지가 ‘스쿠우카이’(救う會 ; 구출회)란 납북 피해자 지원 시민단체가 만들어준 것이다.

북한에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납북 일본인이 12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1980년대 일본인 17명이 북한으로 납치됐고, 그 중 일시적 귀환형태로 돌아온 5명을 제외한 12명이 북한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일본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는 12명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아예 북한에 오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을 향해 거칠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던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북한은 지난 5월 29일 일본 해상보안청에 “오는 31일 0시부터 내달 1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직접 통보하였다.

북한과 일본 사이의 수교 협상이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몰라도 북한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거사 문제와 배상’에 대하여 일본이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쉽사리 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한 핵문제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한 북일협상의 시원한 결말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일 수 있다.

2002. 9. 17.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총리를 맞이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2. 9. 17.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총리를 맞이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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