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20세기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해체주의를 창시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서양철학이 추구해 온 이성중심 사고를 비판하며 서양철학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고 '해체론'이라는 혁신적 사유방식개념을 도입, 새로운 문학비평을 시도했다. 질서의 기초에 있는 것을 비판하고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원론을 부정하며 다원론을 내세운 데리다는 이른바 해체주의를 정립시켰다.

해체, 그리고 확산과 응집을 통한 재창조. 박종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유효한 키워드다. 파쇄지를 이용한 감각적인 입체작업으로 우리 화단에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박종태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인 종이. 그 중에서도 버려지는 책과 종이들, 즉 파쇄지를 창의적으로 활용함으로서 평범하고 익숙한 소재라도 색다르게 바라보는 시선과 아이디어를 거쳐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주제는 ‘종이에 관한 생각’이다. 박종태 작가는 “인류가 만들어 놓은 방대한 지식은 인류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와 규범이다. 이러한 지식의 보편적 가치 규범은 오랜 시간동안 경험과 습득으로 형성된 관념이 됐고 이에 의문을 제기하며 관념을 허물기 위한 종이로서의 재창조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다양한 책들과 문서들을 파쇄기에 넣어 잘게 부수고 이것을 먹과 수성물감, 수성접착제를 이용해 손수 패널 위에 일일이 쌓아올린다. 새로이 포개지고 연결된 종이들은 특유의 질감과 느낌을 통해 보는 이들이게 다른 예술 분야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느낌이 살아 있는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박종태 작가는 종이 파쇄 행위가 다분히 의도적이며 행위를 파괴가 아닌 변화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종이 본래의 ‘형’을 변형시켜 용도변경을 시도한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능동적인 창작행위’라는 것. 파쇄지는 그의 손길을 수없이 거치며 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와 텍스트를 느끼며 감상하는 예술 작품 그 자체로 다시 태어난다. 언뜻 파괴 또는 해체라는 부정적 경향이 강한 예술로 비춰질 수 있지만 기존의 형태를 단편화하여 단순한 형태로 변형, 조합하며 대상을 보는 방식을 다중화했다.  

박종태 작가는 “수많은 작은 종이조각은 물질의 확산을 만든다. 파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위한 변화의 과정. 즉 새로운 창조를 위한 능동적인 창작행위다. 각각의 다른 형태와 글씨, 그리고 작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종이조각을 창작과정에서 응집을 통해 통일된 메시지로 만들고 조율과 조합의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형태로 창조, 즉 작품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다양한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미술의 개념을 독창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박사과정 예술학 전공교수이자 미술평론가인 장미진 교수는 “박종태 작가의 작품은 오늘날의 문화체계와 지식 정보사회의 허상에 대한 남다른 시선과 정신적 대안을 모색하는 선적 수행 및 명상의 태도에서 진행된 결과물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양의 전통매체인 먹을 주로 사용하여 우주의 현색이 품고 있는 정신적인 깊이와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고 있어 주목된다. 동‧서양 예술사유의 조화로 빚어낸 작품들이 많은 이들에게 감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평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가 현대미술이라고 부르는 많은 경향들은 미술의 전통적인 방식들을 벗어나 매체와 표현방식의 확장, 심지어는 미술의 개념까지도 끝없이 넓어지고 있다. 시각예술이라고 여겨졌던 미술은 청각, 촉각, 심지어 후각적인 요소들과 비미술적인 재료들의 등장으로 점차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세기말의 문화를 대변했던 포스트모던 현상들 이후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거나 혼종되는 문화들 속에서 우리는 늘 문화적 경계성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절대적인 진리체계와 현실의 권위주의적 획일성을 해체시키고자 했던 데리다의 사유와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한다는 피카소처럼 기존의 미학적 관점을 벗어나 확산과 응집을 통해 재창조로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려는 박종태 작가의 예술적 도전이 우리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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