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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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5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20.06.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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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6월

지난 6월 16일 오후 2시 50분 판문점 선언의 결실이었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한에 의해 전격적으로 폭파되었다.

초록의 푸르름이 짙어지며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인 6월에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이 더해지는 슬픈 소식이다.

농경문화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반도는 4월과 5월 동안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농번기로 보내고 6월이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이런 6월에 한반도는 언제부터인가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시기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먼저 6·25 한국전쟁을 떠올린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공격으로 시작되어 한반도 전역에 붉은 피를 뿌렸던 날도 6월이었다. 그 전쟁으로 인하여 남과 북이 분단되었고, 그후 70년동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것이 한반도의 오늘이다.

그리고 6·23 선언을 기억하는가.

1973년 6월 23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이었던 이 선언은 남북한이 서로 내정간섭하지 않으며,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압 및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에 반대하지 않고,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으로 6월 항쟁과 6·29 선언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군사력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시한 채 간접선거를 통해 7년 임기의 대통령을 선출하자 1987년 6월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였다.

거세게 일어나는 민주화 요구를 집권 여당이 받아들여 그해 6월 29일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선출한다는 내용의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렇게 수용된 대통령 직접선거가 국민투표에 붙여져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효력을 발하고 있다.

다음으로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정상회담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하여 5개항을 공동선언하였다.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하기 위하여 실무회담을 열 것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정일의 서울 방문은 갑작스런 서거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지난 15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메시지를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당시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이었던 박지원 전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임기내내 국회의원회관 615호실을 사용하였다. 이는 6·15 선언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다음으로 6·12 북미정상회담이 있다.

2018년 6월 12일 비록 한반도가 아닌 싱가포르에서 열린 회담이었지만, 근본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회담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 자체가 세기적 이슈이기도 하였다.

이 회담에서 양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 6·25 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송환 등 4개항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다음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회담에서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2차례에 걸쳐 펼쳐진 연평해전이 6월이었다.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북방한계선(NLL)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우리의 해군 함정과 북한의 경비정 사이에 해상전투가 벌어진 것도 6월이었다.

1999년의 제1차 연평해전에선 북한 어뢰정 1척이 격침되었고 5척이 크게 파손되었으며, 우리 해군은 고속정 5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에선 우리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되고,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비롯하여 한상국 상사 및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북한은 약 30명의 사상자를 내고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퇴각하였다.

특히 제2차 연평해전이 펼쳐진 2002년 6월 29일은 당시 한일 월드컵축구대회가 막바지에 이른 시기였다.

2002년 6월을 기억하는가.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에 이어 2002년 6월에 일본과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 축구대회로 한반도가 뜨겁게 달라 올랐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6월 4일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승리를 시작으로 16강, 8강을 넘어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한반도가 월드컵 축구 열기에 휩싸여 있던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외에도 6월엔 6월 1일 의병의 날을 시작으로 6일 현충일, 18일 건설의 날, 28일 철도의 날 등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6월 28일의 철도의 날은 원래 경인선 개통일인 1937년 9월 18일을 기념하여 9월 18일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침탈을 목적으로 건설된 경인선 개통일을 기념하는 것은 일제 잔재라고 판단하여 2018년 5월 8일 국무회의에서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최초의 철도기구인 철도국이 만들어진 날인 6월 28일을 철도의 날로 지정하였다.

아직 6월이다.

북한은 지난 6월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본격적인 대남 군사도발에 나설 것으로 우려된다.

신록이 우거지는 이 좋은 계절에 한반도는 여전히 우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어서 7월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2020년 6월 16일 폭파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폭파 전/후 모습)
2020년 6월 16일 폭파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폭파 전/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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