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남노래교실 신나남 대표

[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우리는 예로부터 풍류와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시대를 막론하고 춤과 노래가 있었으며 그것은 곧 그 시대의 여흥이자 레크레이션이었다. 전자산업이 발달하고 인터넷시대에 접어 든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우리는 일본식 가라오케를 변형하여 한국형 노래방을 만들었고 이어서 노래강사라는 전문가를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오늘날 노래강사, 노래지도사 또는 가요강사로 불리는 이들은 어쩌면 흥이 넘치는 우리나라에서만 특화된 직업군일지도 모른다. 긴 인류 문화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해온 음악은 그 산업 영역이 나날이 확장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음악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들도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실버세대들에게 노래하며 즐거운 인생을 살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래강사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사회에서 미래의 유망직업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어르신들을 위한 실버강의 분야에서도 단연 인기강좌로 각광받고 있다.

신나남 대표
신나남 대표

신나남노래교실의 신나남 대표가 행복을 노래하는 가수이자 중장년층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노래강사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대전, 천안, 보령, 서천, 부여 등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통기타를 어깨에 메고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 신 대표의 노래교실에 참가하고 있는 수강생들은 2,200여 명에 달하며 하루에 많게는 4곳에 이르는 지역의 수업을 소화할 정도로 강의 일정은 늘 빼곡하다. 하지만 신 대표는 지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쏟아내며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노래교실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정년을 마치고 제2의 삶을 사는 분들이다. 이들이 걱정과 시름을 잠시 잊고 노래를 배우고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굉장한 보람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여러 번의 사업을 하며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던 신나남 대표가 노래강사가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독립유공자(건국훈장 애족장)인 부친(고 이기풍) 명의로 국가에서 받는 연금을 뜻있는 곳에 써보려 했던 신 대표는 연금을 음악봉사 활동에 쓰기로 결심한다. 어려서부터 음악, 체육, 미술 등 예술 부문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2004년 3월부터 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서 ‘사랑의 콘서트’를 진행하며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 활동을 시작한다. 선친인 이기풍씨는 1916년 독립운동 지하 조직연락책을 활동을 하다 1919년 3월 10일 황해도 봉산권 서종면 단장리에서 주민 200여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행진을 하다 체포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뤘다고 한다. 하지만 애국지사 지정도 보지 못한 채 1975년 세상을 떠난다.(1977년 대통령 표창 추서,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애족장 추서)

2004년부터 현재까지 자선공연을 열어 얻은 수익금으로 심장병 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등 소외 이웃을 지원해 왔다. 현재까지 공연 봉사시간만 해도 2,300여 시간. 2004년 6월 11일자 동아일보는 금강휴게소에서 열린 ‘사랑의 콘서트’를 소개했으며 또, KBS 아침마당, TJB ‘오늘’ 등에서도 그의 노래교실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담을 전파했다. 신 대표는 “봉사로 생긴 수익금은 소외된 이웃에 성금 또는 백미 전달로 이어졌다.”며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중을 즐겁게 하고, 모금된 성금으로 우리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되고 즐겁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 대표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선친이 일제 강점기 애국활동을 했듯 그도 음악으로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 것.

이를 계기로 지난 2004년 노래교실을 개설해 강사활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신 대표가 운영하는 노래교실은 현재 대전, 충남 지역에만 16개, 수강생은 2,200여 명 정도다. 신나남 노래교실이 유명해진 것은 신 대표만의 독특한 노래 지도 방식이 입소문을 타면서부터다. 남성이면서 여성의 키(Key)로 노래하며 직접 기타를 연주해 멜로디를 한 음 한 음 쳐주면서 정확하고 세심히 지도했다. 다른 강사와 차별화된 신나남 대표의 강의방식은 음치인 사람은 노래를 잘 하게 도와줬으며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만들어 주었다. 1년이 지나자 자리가 잡혔고 2년이 지나자 강의 신청이 쇄도했다. 신 대표는 “어려운 음부터 부르게 되면 노래를 배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음과 테크닉부터 시작해서 난이도가 있는 구절은 수 없이 반복해 수강생들의 귀와 입에 음정이 익도록 하면 노래를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실력도 자연스레 향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노래를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정성들여 만든 자작곡을 제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하는데, 이 노래로 음반을 낸 제자만도 이미 여럿이며 올해도 음반발표를 계획하고 있는 제자들이 많다. 2012년 대전M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전화노래자랑에서 천여 명의 출연자를 제치고 수상한 대상, 백제문화제의 주요 행사인 백제가요제 대상, 한산모시축제 동상, 광천젓갈축제 가요제 대상, 청양고추축제 가요제 대상 등의 주인공들이 모두 신 대표의 제자들이다. 신나남 노래교실은 전국에서 노래강사로 활동하는 ‘노래마을 사람들’ 모임에서 만든 교재로 최신곡이 발표되기 전 트롯은 물론 젊은 세대들의 가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인다. 특히 성인가요의 경우 노래교실의 보급속도가 방송사보다 빠르다고 귀뜸했다. 신 대표는 “좋은 곡을 가지고도 기회를 얻지 못해 사장되는 곡들을 노래교실을 통해 먼저 대중들에게 알림으로써 무명가수들에게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좋은 곡을 홍보하기도 한다.”며 “방송사보다 먼저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곡들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사)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공주시 지회장을 역임하며 지금까지 10회의 백제가요제를 성사시킨 신나남 회장. 1회부터 4회까지는 어떤 단체의 지원도 없이 개인 사비로 모든 행사를 진행했다. 내년 봄에는 단양에서 전국실버가요제도 개최할 예정이며 가을에는 개인음반도 취입할 계획이다. 게다가 세종, 천안시 광복회 지회장으로 오는 8.14일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개최되는 2019 광복절 가요제 겸 전야제를 앞두고 신 대표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분주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특히 신 대표가 주최하는 모든 가요제는 10대와 20대를 제외한 중장년층만 가요제에 참여할 수 있는데 3,40대와 50대, 그리고 60대 이상이 각각 세 그룹으로 나뉘어 출전할 수 있다. 신 대표는 “요즘 10대와 20를 위한 경연 프로그램이 많은데다 실력 자체가 월등하기 때문에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그들과 겨루기엔 사실 힘들다.”며 “10대와 20대를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3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도 기회를 주기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언젠가는 2200여명의 노래교실 회원들과 함께 ‘신나남 노래교실 가요제’을 개최하는 것이 꿈이라며 건강한 웃음으로 언제까지나 신나게 노래를 가르치고 싶다는 신나남 대표. 스스로의 가치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봉사를 실천해가는 그의 아름다운 해피바이러스가 머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