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주(慶州)

서울 역사편찬원에서 밝히고 있는 ‘서울명칭 유래’에 의하면 서울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해 학계에서는 삼국시대 신라 때로 보고 있다고 한다. 서울 역사편찬원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혁거세왕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 사라(斯羅), 사로(斯盧)라고 했고, 이후 이것이 도읍의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러한 이름들은 수도(京)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의 서울이라는 말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현재의 서울은 삼국시대 백제 온조왕 때(기원전 18)부터 제21대 개로왕 때(475년)까지 약 500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다. 오늘날 송파구에 남아있는 풍납토성이 당시의 왕성이었고, 위례성, 혹은 한성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신라가 진흥왕 때에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신주(新州)를 설치하였고(552년), 선덕왕 때에는 서울 지역을 한산주(漢山州)로 개칭(637년)하였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9주로 나누게 되면서 경덕왕 때(757년)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고치게 된다.

이렇게 서울이 한주(漢州)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자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강 이름이 한강(漢江)이 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개성을 수도로 삼았으므로 당시에는 현재의 서울을 한(漢)강의 북쪽(陽)을 의미하는 한양(漢陽)이라고 불렀다. 만약 고력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의 수도로 개성이 계속되었다면 오늘날의 서울은 개성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서울은 나라의 수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수도를 의미하는 한자인 경(京)이라는 글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이를테면 중국의 수도인 북경(北京), 일본의 수도인 동경(東京)에 오롯이 남아 있다. 그런데 나라의 수도라는 뜻을 지닌 서울이라는 말이 신라에서 유래했다면 신라에 그 명칭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시대에 있어 한 나라의 수도는 그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지역적 변동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신라 만큼은 왕조가 존재했던 992년 동안 서라벌이라는 한 곳에서 변동이 없었다. 물론 신라시대 당시에는 서라벌이 아니라 오늘날의 경주를 금성이라 불렀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금성은 서울이라는 의미를 지닌 경도(京都)로 시종 표기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을 하였을 때(935년), 고려 태조는 신라를 경주(慶州)로 개칭하였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새롭게 수립한 나라의 수도를 개경(개성)으로 정하고 있었기에 신라를 경주(京州)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서울로 불리던 신라의 수도 금성이라는 지명도 서울을 의미하는 경주(京州)가 아닌 경주(慶州)로 자리하게 되었다.

만약 고려 태조가 신라의 서라벌을 존중하여 그 명칭을 경주(慶州)가 아닌 경주(京州)로 인정하였었다면, 오늘날 경상북도(慶尙北道)와 경주(慶州)의 경(慶)이라는 글자는 모두 경(京)으로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천년 고도인 경주를 둘러 보면서 서울이라는 말의 본거지인 서라벌이란 명칭은 수도 서울로 이전되어 사라졌고, 찬란했던 992년의 신라 왕조의 역사는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 역사의 본거지였던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국가가 자신들의 찬란했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관광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실이 부러운 것은 필자 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경주(慶州)가 과거 빛나던 모습을 되살려 신라시대 경주(京州)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 상상도 (출처 : 나무위키)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 상상도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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