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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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18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19.04.2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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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한국 문학의 뿌리

누구나 그렇듯이 특별한 외부 행사가 없는 주말이면 TV를 즐겨 본다.

필자 역시 TV를 즐겨 보는데, 지난 주말 우연히 ‘도전 골든벨’이란 프로를 보면서 고려 가요인 ‘정과정곡’에 대한 문제가 나와 귀를 쫑긋 세웠다.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며지내니 山접동새와 난 비슷하여이다. 아니시며 거짓인 줄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알고 있으리이다. 넋이라도 님과 한곳에 가리라 아으 우기시던 이 뉘더시니잇가. 과(過)도 허물도 천만(千萬) 업소이다. 무리의 말이신저 슬픈 일이저

아으 님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아소 님하,

돌려 들으셔 괴오쇼셔.

프로그램에서는 위 시의 일부분을 제시해주고 제목을 맞히는 문제였다. 최후의 1인으로 남아있던 출연자는 갑작스런 질문에 ‘찬스’를 사용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힌트로 주어진 내용중 ‘정과정’은 고려향가라는 표현이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정과정곡’이라는 시는 고려가요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고려향가’라는 힌트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향가’는 삼국시대 말엽에 발생하여 통일신라시대 때 성행하다가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려 초까지 존재하였던 한국 고유의 정형시가이다.

향가는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서동요(薯童謠)》에서 고려 광종 때 균여의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11수에 이르기까지 약 370여 년 동안 성행한 듯하나,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도합 25수이다. 그것을 형식면에서 구분하여 보면 4구체(四句體) ·8구체(八句體) ·10구체(十句體)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들 3가지 형식중 10구체가 가장 일반적인 형식으로 10구체 향가는 ‘사뇌가’라고도 불린다. 일설에 의하면 10구체 향가를 사뇌가라 한 것은 특히 사뇌야(詞腦野) 지방에서 주로 유포 ·발달하였고, 국가적인 가악에서 그 음악을 사뇌악(詞腦樂)이라 하였으므로 이 10구체를 사뇌가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들 10구체 향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면 전절 8구에 이어 마지막 후절 2구 첫부분이 감탄사 혹은 어조사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향가에 이어 나타나는 가사문학과 시조부문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먼저 10구체 향가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본다.

아으, 달은 저 아래로 떠갔더라.(彗星歌-융천)

아으, 이 몸을 길어 두고 48대원(大願) 이루실까(願往生歌-광덕 부인)

아으, 미타찰(彌陀刹)에 만난 나는 도(道) 닦아 기다리련다(祭亡妹歌-월명)

아으, 군(君)답게, 신(臣)답게, 민(民)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니이다(安民歌-충담)

아으, 잣가지 높아 서리 못 누을 화랑장(花郞長)이여(讚耆婆郞歌-충담)

아으, 내게 끼쳐주시면, 놓아 쓸 자비(慈悲)여 얼마나 큰 고(희명)

아으, 오직 요만한 선(善)은 아니 새 집이 되니이다(遇賊歌-영재)

위에서 보는 것처럼 10구체 향가의 마지막 구는 모두 ‘아으’라는 감탄사 혹은 어조사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지난 주말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정과정’이 고려 향가라고 한 것은 ‘정과정’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소 님하, 돌려 들으셔 괴오쇼셔.”라고 표현하고 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향가가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시가 형식인 ‘가사’문학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작품들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와 슬프다

우리도 인간에 나왔다가 염불 말고 어이 할꼬

나무아미타불(西往歌-나옹화상)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엇지하리(賞春曲-정극인)

님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님 조차려 하노라(思美人曲-정철)

이 몸이 이렁굼도 역군은(亦君恩) 이샷다(俛仰亭歌-송순)

어느 때 형승을 기록하여 구중천에 아뢸까(關西別曲-백광홍)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향가에 이어 나타난 가사문학에서 10구체 향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보인 형식이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첫 3음절이 감탄사나 어조사가 아니라 일상적 의미를 지닌 용어로 쓰여지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가사문학이 쇠퇴하고, 뒤이어 나타나는 시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초장, 중장, 종장이라는 3장 6구 형식을 지닌 시조는 종장 부분에서 향가와 가사문학에서 보였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초기의 시조에서는 종장의 첫 3음절을 감탄사 혹은 어조사로 구성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 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1353~1419) : 고려말 조선초 성리학자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것치 거믄들 속조차 거믈소냐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 손 너뿐인가 하노라 ◎ 이직(1362~1431) : 고려말 조선초 문신

선인교(仙人橋) 나린 물이 자하동(紫霞洞)에 흘너 드러 반천년(半千年) 왕업(王業)이 물소리뿐이로다 아희야, 고국흥망(故國興亡)을 무러 무삼하리요 ◎ 정도전(1342~1398) : 고려말 조선초 정치가

서검(書劍)을 못 이루고 쓸데 없는 몸이 되어 오십춘광(五十春光)을 한 일 없이 지냈구나 두어라 어느 곳 청산(靑山)이야 날 꺼릴 줄 있으랴 ◎ 김천택 : 조선 후기 시조작가

이상의 시조 작품 종장의 첫 부분이 ‘어즈버’, ‘아마도’, ‘아희야’, ‘두어라’ 등의 3음절로 구성되어 10구체 향가의 마지막 부분과 동일한 형태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 문학의 중요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는 시조는 신라시대의 향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향가와 관련하여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향가라고 하는 것을 최초로 다룬 인물은 고려 제4대 광종 시기에 활동했던 최행귀(崔行歸)라는 사람이다. 그는 균여대사의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 11수를 한문으로 번역하고 서문을 썼는데, 그 서문에 향찰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10구체 향가인 사뇌가의 형식을 3구6명(三句六名)이라고 정의하였다.

최행귀 이후 향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는데, 일제 식민지 시기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라는 일본인이 1929년에 「향가 및 이두의 연구(鄕歌及吏讀의 硏究)」를 발표하였다. 우리의 문학작품을 일본인이 연구하고 발표하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양주동(梁柱東) 박사가 절치부심하며 향가 25수에 대한 주석서인 「고가연구(古歌硏究)」를 1942년에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들어 우리의 향가에 대한 연구실적이 조금씩 나오는 듯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25수의 작품 이외의 새로운 작품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향가가 성행했던 기간이 거의 500년 정도로 가늠되는 만큼 더 많은 향가가 어디선가 잠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문학의 뿌리인 향가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과 연구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삼국유사」의 ‘서동요’와 ‘헌화가’ 부분 (자료 : 네이버)
「삼국유사」의 ‘서동요’와 ‘헌화가’ 부분 (자료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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