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위대한 근성

최근 세계경제를 전망하는 국제기관들인 IMF, OECD, 그리고 Euromonitor 등이 분석한 보고서들에 의하면 “세계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세계 경제의 위기는 단순히 일시적 경기위축이 아니라 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많다.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지속되는 가운데 2010년대를 시작한 세계경제는 한동안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2016~2017년간 반짝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제 다시 침체에 빠질 위험에 직면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망처럼 세계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 우리나라와 같이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예상 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나 한국경제가 위험한 것은 구조적인 문제와 외부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존 주력산업인 중화학공업 및 ICT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첨단 산업도 서서히 강국들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많은 가계부채는 소비를 억누르고 있다. 작년 4분기 말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7.9%로 국제금융협회(IIF)가 수치를 제시한 34개 선진·신흥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선진시장 평균은 72.7%, 신흥시장은 37.6%였다. 게다가 미국, 중국, 유럽경제도 흔들리고 있어서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경제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한국에서 오랜기간 기자생활을 했다는 외국기자가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를 했다는 몇가지 내용을 인용해 본다.
대한민국 국민들 평균 IQ가 105를 넘을 뿐만 아니라 문맹률이 1% 미만인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아직도 휴전중인 나라이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었으며, 가장 짧은 기간에 IMF 위기를 극복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직도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2017년 기준 OECD 국가중 2위를 차지하는 부지런한 민족이다.
이제는 인터넷, TV, 초고속 통신망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국가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인 ‘한글’을 보유한 나라이다. 실제로 24개 문자로 구성된 한글은 11,000여개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데, 일본어로는 300여개, 중국어로는 400여개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UN은 이러한 한글을 문자가 없는 나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한민족의 우월성이 도드라지고 있다.
먼저 양궁 부분을 보자.
개인전만 있었던 1984년 LA 올림픽에서 서향순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단체전이 도입된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부터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까지 여덟 차례 대회를 모두 금메달로 장식한 여자단체는 전대미문의 역사로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같은 시기에 여자 개인전과 남자 개인 및 단체전에서도 엄청난 금메달 회득이 있었지만 여자단체전 8연패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록이기에 뒷전으로 밀린다.
이는 동양 역사에서 한민족을 동이(東夷)종이라 부른 것과 관련이 깊다. 즉, 독이족의 이(夷)자를 파자 하면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로 풀이 되기에 커다란 활을 다루는 민족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프로골프 종목을 보자.
오늘 2019년 4월 14일 현재 LPGA 선수들중 세계 랭킹 10위 이내에 1위인 고진영 선수를 비롯하여 한국선수가 5명이나 포진해 있으며, 2019년 들어 LPGA 투어 대회로 열린 8개 대회에서 5차례 우승을 하고 있다. 이미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여 5개 메이저대회에서 4개에 대회를 우승한 ‘커리어 그렌드 슬램’에 더하여 세계 최초로 ‘골든 그랜드 슬래머’가 된 것도 세계 프로골프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다.

스포츠 뿐 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름도 지위도 없는 백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 살려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고구려와 백제유민(遺民)의 국가부흥을 위한 의병투쟁에서, 가까이는 일제 식민통치 시기에 중국에서 투쟁한 항일의병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병운동이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1592) 때와 1895년(고종 32)의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1910년 국권피탈 전후의 의병운동이 가장 활발하였다. 조선 선조 초 일본은 오랫동안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해 얻어진 조직화된 군사력으로서 조선을 침공하게 되었고 이에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조선의 관군은 패전을 거듭하여 서울까지 함락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상황에서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로 인하여 일본군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는 조선 땅에서 물러가는 것으로 결론지어 졌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무장하여 세계대전을 일으켜 악명을 떨치던 시기를 살펴보자.
일본이 1932년 중국에 만주국을 건설하고 1945년 패망하기까지 난징 대학살을 포함하여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라만 3,200만명에 이르지만, 중국인이 일본 고위층을 암살하거나 사살한 사실은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약 35년 동안 피살된 사람이 3만 2,000명으로 중국의 피살자 규모에 1천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일본 고위층에 대한 암살 및 사살 시도와 성공 횟수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고, 1926년에는 나석주 의사가 민족경제 파탄의 주범인 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뒤 조선철도회사에서 일본인을 저격한 후 자살했다. 1932년 이봉창 의사는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으며, 같은 해 윤봉길 의사는 상해에서 폭탄으로 상해 팔기군 시라가와(白川) 대장 등 일제 고위 장성 10여명을 살상시켰다.
나라를 구하는 일은 목숨을 바치는 의병이나 투사와 같은 역할 이외에도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형태로도 나타났다.
지난 1904년 일본이 조선에 대해 고문정치를 시작한 후 한국경제를 파탄에 빠트려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조선 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하였고, 이로 인해 조선 정부가 짊어진 외채는 1907년에 1,300만원이 되었다. 당시 조정은 세입에 비해 세출 부족액이 77만원이나 되었기에 거액의 외채상환이 불가능했다.
이에 전 국민이 주권수호 운동오르 국채를 상환하여 국권을 회복시키자고 뜻을 모아 추진한 것이 국채보상운동이었고, 1907년 2월부터 4월말까지 230만원이 모금되었다. 이러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일본은 강력하게 탄압하였으며, 보상운동 관계자를 구속시키는 등의 행위로 좌절시켰다.
나라가 어려울 때 나타나는 국민들의 행동은 IMF 위기 당시에도 금모으기 운동으로 빛을 냈다. 이 운동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대한민국의 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들이 자신이 소유하던 금을 국가에 자발적인 희생정신으로 내어놓은 운동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 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다. 금모으기 운동에는 전국 누계 약 351만 명이 참여하였고, 이 운동으로 약 227톤의 금이 모였다. 그것은 약 21억 3천달러어치의 금이었다. 국가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한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모두에 언급한 것처럼 오늘의 우리 경제는 분명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위기 때마다 세계를 석권하는 산업이 등장해 고비를 넘겼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는 휴대폰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자동차, 화학, 정유’ 산업과 스마트폰,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등이 교대로 수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한민족의 대단한 근성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두뇌를 지니고 있는 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민족으로 위기 때마다 상상 이상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DNA를 지니고 있기에 필자는 우리의 경제 위기를 위기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 양궁 (출처 : 네이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 양궁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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