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1 17:04 (금)
[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14
상태바
[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14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19.03.25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움에 대하여

그리움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보고 싶어 애가 타는 마음’을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속으로 바라는 일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 바라는 바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마음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바로 그리움이 아닌가 한다.
오늘은 우리 선조들의 시에서 보이는 그리움을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살펴본다.
먼저 송도 3절의 하나로 유명한 화담 서경덕의 시 속에 나타난 그리움을 살펴본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귄가 하노라

화담 서경덕(1469~1546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1519년 당시의 제도인 현량과(賢良科)에 수석으로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였고, 1531년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나 단념한 뒤 성리학 연구에 힘썼다.
화담이 활동하던 시기에 황진이는 개성의 기생으로서 10여년간 면벽 수도했다는 지족선사를 파계시셨을 뿐만 아니라 중종 4년에 등과하여 대제학(정2품으로 오늘날의 장관급 벼슬)까지 오른 소세양(1486~1562년)도 파계시켰다.
그 황진이가 화담 서경덕을 시험하고자 유혹하였으나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화담의 인품에 감격한 황진이가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미 육체적 사랑의 차원을 넘었기에 화담도 황진이에 대한 보고픈 마음을 위와 같은 시로 표현하였다.
화담이 평생 은둔생활을 하며 학문을 즐겼기에 속세를 벗어난 만중운사(萬重雲山)에서 황진이를 향한 그리운 마음을 ‘지는 잎 부는 바람에도 행여 그 사람이 아닌가’고 애잔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근대 시기 사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육당 최남선의 시 속에 나타난 그리움을 살펴본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육당 최남선(1890~1957년)은 1908년 11월에 창간된 『소년』의 권두시로 발표한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신체시(新體詩)로 자유시로의 변화를 이끈 최초의 시인이었다.
<혼자 앉아서>란 제목이 붙은 이 시는 1926년 발표한 『백팔번뇌』에 실린 시로 고독한 분위기 속에서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화담의 속세를 벗어난 깊은 산 속의 배경이 아니라 육당 최남선은 방이라는 공간 속에서 온다고 약속하지 않은 사람을 특별한 의미없이 기다려지는 마음에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고 있다’며 그리운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시인이자 교육자였던 청마 유치환의 시 속에 나타난 그리움을 살펴본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 유치환(1908~1967년)은 중고등학교 교장 산생님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모은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67년)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위의 시는 ‘그리움’이란 제목을 붙이고 있는데, 청마는 이 시에서 보고픈 님을 향한 그리운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외부적 여건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심정을 ‘파도’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보고픈 사람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아니라 보고픈 상대인 ‘임’에 대한 일방적인 감정을 가눌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3명의 시 속에서 보여지는 ‘그리움’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조선 중기 시기의 화담 서경덕은 깊은 산속에서 ‘지는 잎 부는 바람’에서 보고픈 사람을 떠올리고 있고, 근대 시기의 육당 최남선은 홀로 방안에 앉아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길을 주면서 보고픈 사람이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이들 두 사람과 달리 청마 유치환은 보고파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심정을 ‘파도’에 비유하여 체념하듯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어느덧 춘분도 지나고 ‘꽆피는 봄날’이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 마다의 마음속에 보고픈 사람이나 소중하게 간직하고픈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 봄에 그 사람이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한 번 쯤 열어보았으면…

만인의 그리움 대상이었던 황진이 그래픽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만인의 그리움 대상이었던 황진이 그래픽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