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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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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10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19.02.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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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Ace)의 다양한 의미

우리는 주변에서 에이스(Ace)라는 말은 자주 듣게 된다.
스포츠가 일상의 생활이 되면서 에이스라는 말은 이제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
테니스나 배드민턴 경기에서 상대방이 받아칠 수 없는 서브를 구사하였을 때에는 ‘에이스’라고 불러준다. 그리고 야구 종목에서는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발 투수를 ‘에이스’라고 부르는데, 대개 선발 로테이션에서 첫 번째 투수를 말한다.
그런데 이 에이스라는 말 속에는 스포츠에서 만이 아니라 군사적 용어로서도 ‘최고’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리 익숙하게 이해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면 에이스는 카드나 주사위에서 ‘1’을 의미하는데, 그 쓰임새는 가장 높은 순서나 수준으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카드에서 순서는 1, 2, 3 … 10, J, Q, K 순으로 나열하지만, 승패를 가리는 서열에서 ‘1’은 ‘A'로서 K를 이기는 가장 높은 지위를 부여 받는다. 카드에서 이렇게 높고 귀하게 대접받는 ’에이스‘가 군에서는 어떻게 쓰일까?
사전에서는 적기를 많이 격추한 하늘의 용사를 ‘에이스’라고 하며, 그 기준은 미군에서는 5대 이상, 영국군에서는 10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적기를 5대 이상 격추시키면 ‘에이스’라 불린다.
이러한 기준으로 에이스인 전투기 조종사를 살펴보면 제1, 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 독일 공군이 에이스 칭호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는 독일군이 우수한 조종사와 항공기 육성을 제1차대전 이전부터 준비한 결과였고, 전투기 운용에 있어서도 전략폭격은 미비한 대신 전술 공군위주로 육성했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또한 독일 공군이 적 전투기 격추 기록을 대대적으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전무후무할 대규모 물량전인 공중전을 소련군과 치렀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공중전은 대체적으로 중저고도에서 벌어졌는데, 당시 소련군 전투기들은 고고도에서의 출력이 부족한 관계로 고고도로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는 독일군 전투기들에게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더구나 독일 공군은 최상급의 성능을 가진 항공기에다 수년간의 실전으로 단련된 조종사들이었으니 소련 공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 공군도 상대가 소련이 아니라 연합군이 되었을 때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조종사 요원들의 압도적 차이와 전쟁의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독일 공군 조종사들은 연합군과의 공중전에서 혹사를 당했다. 적은 수의 조종사들로 압도적으로 많은 연합군을 상대하다 보니 독일군의 출격 횟수는 연합군 보다 무려 5배에서 10배까지 많았다. 그에 따라 교전횟수도 당연히 연합군보다 많았으며, 평균적인 5기 격추 파일럿은 미군은 1,297명, 영국군도 영연방을 포함하면 1,200명을 넘어가지만 독일군은 88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실례를 살펴보면 독일군 최고 에이스인 하르트만은 2차 대전동안 약 1,400 소티를 출격해서 852회 전투를 벌였고 적기 352대 격추를 기록한 반면, 영국군 최고 에이스인 제임스 존슨은 515소티를 출격해서 57회 전투를 벌였고 38대를 격추시켰다. 여기서 소티는 전투기 1대가 1회 출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투기가 출격했다고 하여 전투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티 보다 전투 횟수가 적다.

세계대전사에 기록된 공군 ‘에이스’들을 간략히 살펴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있어서는 독일의 리히트 호펜(1892.5.2.~1918.4.21)은 80기를 격추하여 최고의 에이스에 올랐다. 그는 공중전에서 격추되어 사망한 것이 아니라 1918년 봄 출격했다가 지상에서 발사된 대공 기관총탄을 맞고 기체와 함께 지상에 무사히 착륙한 뒤에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1925년 그의 유해가 독일로 돌아오고, 베를린 군인묘지에 묻힐 때 첫 삽을 뜬 사람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다.
1차 대전에 있어 두 번째 에이스는 75기를 격추시킨 프랑스의 르네 퐁크(1894.3.27 ~ 1953.6.18)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 최고의 에이스는 앞서 언급한 독일의 에리히 하르트만(1922.4.19 ~ 1993)으로 352기를 격추시켰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하르트만에 앞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적기 100기를 격추시킨 베르너 묄더스(1913.3.18.~1991.11.22)를 높이 평가한다.
제2차 세계대전시 미국에서는 개비 가비레스키(1919~2002)가 P-47 썬더볼트를 몰고 1945년 3월까지 총 28대의 독일 전투기를 격추시켰고, 리처드 봉(1920.9.24.~1945.8.6.)은 쌍발기로 40기 이상의 일본기를 격추시킨 에이스였으며, 척 예거(1923.2.13.~ )는 세계 최초로 고도 13,700m에서 수평비행으로 마하 1을 넘는데 성공하였다.
소련에서는 이반 코제두프(1920.6.8.~1991.8.8.)가 66기를 격추시킨 에이스였고, 일본의 해군 전투기 조종사인 이와모토 데츠조(1916.6.14.~1955.5.20.)는 미국측 연구에 의해 확인된 단독 격추수만 80기이고, 본인이 남긴 수기에는 202기를 기록하고 있는 에이스였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존슨(1915.3.9.~2001.1.30.)이 38기 격추로 영국 공인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의 유추이강(1913.2.4.~1937.19.26)도 중일전쟁 시기에 적기 13기를 격추시킨 에이스였다.

이제 오늘날의 세계를 살펴보자.
제1, 2차 세계 대전에서 세워진 ‘에이스’ 관련 기록들은 현대에 깨어지기는 매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의 전투기들은 극도로 복잡해지고 첨단화되었으며 이들 전투기를 운용하는 조종사들 역시 극도로 전문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이 주는 고통과 참혹함을 경험한 인류가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에이스’의 탄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테니스 경기에서 에이스를 반복하여 상대방을 ‘0’으로 묶어두고 게임을 획득하면 이를 ‘LOVE'게임이라고 부른다.
독자 여러분 모두 스스로의 일상에서 수많은 ‘에이스’를 쌓아가면서 훌륭한 ‘LOVE'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공군 에이스는 적기 5대 이상을 격추시켜야 얻는 칭호이다 (출처 : 네이버)
공군 에이스는 적기 5대 이상을 격추시켜야 얻는 칭호이다 (출처 : 네이버)
대한민국의 영공을 지키는 F-15K 전투기 (출처 : 네이버)
대한민국의 영공을 지키는 F-15K 전투기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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