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맞으며

우리의 소중한 영토, 독도 (자료출처 : 네이버)
우리의 소중한 영토, 독도 (자료출처 : 네이버)

 

2월 22일은 일본에서 주장하는 소위 “다케시마(竹島, 우리의 獨島)의 날‘이다.
다케시마의 날 행사 주관은 일본의 지방현인 시마네현이지만 일본 정부는 이날 기념식에 자민당의 3선의원으로 내각부 정무관(차관급)인 안도 히로시(安藤裕)가 참석한다고 미야코시 미스히로(宮腰光寬) 일본 영토문제담당상(장관)이 15일 밝혔다.
일본 중앙정부의 정무관급 인사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2012년말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후 7번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 정부의 정무관 참석 행위는 단순히 독도와 관련한 행사의 문제가 아니라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을 심화시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필자가 이미 여러차례 주장하였듯이 일본 정부는 금년부터 일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의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법제화하였다.

금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접하면서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교육을 생각하자니 지난 20세기초 한일합병의 역사가 떠오른다. 
우리 민족사에서 치욕적인 일제 식민지의 시작은 1910년 8월 29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당시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오랜 시간 치밀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시키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어도(일본명 센카쿠열도)를 편입조치하였다. 1894년 발발한 동학운동을 빌미로 조선에 내정개혁을 강요하였고, 1895년 국모인 민비를 시해한 후 1896년에는 조선에 일본 헌병대를 설치하였으며,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1905년 독도를 편입조치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1907년 고종을 퇴위시킨 뒤 정미 7조약을 체결하면서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어 1909년 기유간서를 통해 사법권을 박탈한 후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을 단행하여 조선을 식민지화하였다.
이 시기동안 일본은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이용하여 한일합방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제 독도문제를 돌아보자.
일본이 금년부터 초중고에서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내용의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할 경우, 이같은 교육을 받고 성장한 일본의 초중고생들이 성인이 되는 20~30년 후의 독도에 대한 의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아마도 2019년 2월 현재의 일본인의 독도에 대한 영유 의식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독도에 대한 영유의식이 강한 만큼 독도문제는 현재 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과 관련하여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일본이 초중고에서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교육을 완정하게 포기할 때까지 우리도 초중고에서 의무적으로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교육은 시험과 평가를 거쳐 상급학교 진학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실시되어야 한다. 
둘째, 초중고에서의 교육 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독도 영유권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작용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기관이나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평가나 시험 등에서 독도 관련 문제가 출제되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의식화가 일상화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독도의 날(10월 25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펼쳐야 한다. 10월 25일은 대한제국시기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칙령 제41호로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독도는 우리의 소중한 영토이다.
소중한 만큼 우리 스스로가 관심을 가지고 영유의식을 높여가야만 지켜낼 수 있다.
금년부터 일본의 모든 초중고에서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내용의 교육이 실시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우리는 그 이상의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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