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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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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6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19.02.04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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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올림픽 첫 금메달에 대하여

올림픽은 말 그대로 지구촌 축제이다.

4년마다 전 세계인이 올림픽 경기에 집중하면서 환호한다.

그리고 그런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일이란 것은 메달을 따는 개인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그 선수가 소속된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나 경기 종목별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출전하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제전 경기로부터 비롯된 행사를 프랑스의 쿠베르탱에 의하여 부활된 올림픽은 1896년 그리이스의 아테네에서 첫 대회를 치른 이래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40년과 1944년 대회를 제외하곤 4년마다 개최되었다, 2020년에는 제32회 올림픽이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런 올림픽 무대에 우리나라는 식민치하에서 해방된 이후 1948년 런던 대회부터 참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올림픽 무대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하는 첫 금메달은 1976년 몬트리올에서 레스링의 양정모 선수가 주인공이 되었다. 올림픽에 참가한지 무려 28년 만에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올림픽 출전사를 살펴보면 사실상 첫 금메달은 1956년 호주의 멜버른 대회에서 나와야 했다. 바로 복싱 밴텀급에 출전한 송순천 선수가 주인공이다.

당시 송순천 선수는 복싱에 입문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약관 20세의 젊은 선수였다.

송순천은 멜버른 올림픽 1년여 전인 1955년 4월 성북고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고교생의 몸으로 한국체육관을 찾아 복싱을 시작했다. 그해 가을에 열린 멜버른 올림픽 파견 복싱 1차 선발전에서 송순천은 다섯 경기를 모두 KO로 이겨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으며, 이후 4차례의 선발전에서 우승해 멜버른행 비행기를 탔다.

송순천은 멜버른에서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후 필리핀,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선수를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전에 올랐다. 1956년 12월 6일 벌어진 멜버른올림픽 복싱 밴텀급 결승전의 상대는 동독의 볼프강 베렌트였다. 참고로 1956년부터 1964년 대회까지 동독과 서독은 독일이라는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이날 결승전에서 송순천은 독일의 볼프강 베렌트를 맞아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2라운드가 끝났을 때 국기 게양대의 진행요원은 송순천 선수가 승리할 것을 감안하여 금메달 자리에 태극기를 미리 걸어 놓았다. 왜냐하면 송순천 선수가 워낙 압도적인 경기를 하고 있어서 3라운드까지 가지 전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는 3라운드까지 이어졌고, 판정결과는 뜻밖에도 동독의 베렌트가 3-2로 승리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대한민국의 올림픽 첫 금메달은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당시 복싱의 심판진은 유럽세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편파적인 판정으로 말썽을 일으켰다. 그런 관계로 ‘올림픽에서 복싱의 역사는 편파 판정의 역사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참고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종목의 체급별 금메달리스트 현황을 살펴보면 미국과 유럽 이외의 국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아쉬움 속에 은메달을 획득한 밴텀급의 송순천 선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선수이다.

멜버른에서 송순천 선수를 판정으로 이기고 돌아간 동독의 베렌트 선수는 7년이 지난 1963년 서독에 사는 친구를 거쳐 대한체육회로 편지를 보내왔다. 베렌트는 편지에서 “그날의 결승전, 그리고 당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경기는 당신이 이긴 것이었다. 서독의 친구를 통해 당신이 최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선물이라도 보냈을 텐데…”라고 하여 결승전 당사자가 송순천의 승리를 인정하였다. 이는 곧 1956년 멜버른에서의 판정이 편파적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9월 14일. 송순천 선수와 베렌트는 32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베렌트는 독일의 사진작가로 송순천은 대학 교수의 신분으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베렌트는 “당신의 주먹이 더 강했소. 그날 경기는 당신이 승리자요.”라고 말하며, 이 얘기를 자신의 입으로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올림픽 첫 금메달이 1976년 몬트리올에서 나오기 전 이미 멜버른에서 사실상의 금메달이 나왔다.

물론 그 보다도 더 이전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사실이 있지만 당시에는 일본 국적으로 출전했기에 또 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송순천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1956년이 아니라 2019년에 이루어졌다면 아마 편파적인 판정으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살이를 보노라면 실력만 가지고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다. 그 실력을 밀어주고 협력해 주는 뒷받침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실력에 대한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순천 선수의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결승전 장면 (출처:뉴시스)
송순천 선수의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결승전 장면 (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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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순 2019-02-04 10:15:50
펜싱 신아람 선수가 생각나네요...1초......태어나서 첨으로 1초가 그렇게 긴시간인지 첨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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