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철 박사의 칼럼] 독도 이야기-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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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의 칼럼] 독도 이야기-38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18.12.17 09: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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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 우리 정부에 바란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독도문제에 대하여 일본 정부에 바라는 글을 썼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치밀하고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일본의 모든 초중고에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의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입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독도와 관련하여 아무런 대응책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금년 2월부터 시작한 독도이야기를 통해 필자는 독도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에피소드까지 다양한 소재를 통해 독도문제를 얘기했다. 이제 그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해 우리 정부에 바라는 바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역사적 사실 앞에 당당한 자세를 보여라.
우리의 역사는 대륙에 위치한 중국과 섬나라인 일본의 가운데 자리한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 여건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지켜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대적 상황을 두고 수없는 고민을 해왔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독도 문제를 두고 그간 우리의 역사는 수차례에 걸쳐 당당하지 못한 태도를 취했었다.
우선은 지난 1693년 봄 일본 어부들이 안용복 등을 일본으로 납치해갔다가 그들을 송환하면서 대마도주가 서계를 통해 울릉도를 ‘본국의 죽도’라고 일본 영토로 표현하면서 죽도에서의 조선 어민들의 출어를 금지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조선 조정은 일본과의 정면대응을 피하자는 온건 대응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비록 우리나라 울릉도일지라도 … 우리 어선이 귀경의 죽도에 들어가서 번거롭게 하고, … 이웃나라와 교제하는 정의는 실로 기쁘니…”라고 답신을 보낸 관계로 당당하지 못했다. 대마도주는 이 문서의 표현중 ‘우리나라의 울릉도’라는 표현만 삭제한다면 손쉽게 울릉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도에서 이 표현을 삭제해 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고려하여 분명하고 냉정한 대응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대응을 한 것이 큰 화를 자초할 뻔하였다. 이후 대마도주의 집요한 삭제 요구가 ‘교활한 왜인이 필시 점거하여 소유하려는 것’으로 파악한 조선 조정이 문제의 ‘죽도(오늘날의 울릉도)’가 울릉도가 확실하다는 서계를 일본에 보내는 한편, 울릉도로의 왜의 출어를 금지시키도록 했다.
이후 수년간에 걸친 외교전 끝에 일본측이 1696년 1월 28일 에도 막부가 죽도도해 금지령을 내림으로써 상황은 종결된다.

다음으로 지난 1996년부터 우리는 일본과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획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협상이 시작된지 20여 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도 이 협상은 타결되지 못하고 있다.
EEZ 경계획정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협상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도 역사 앞에 당당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EZ 경계획정 회담이 시작된 1996년부터 제6차 회담이 열린 2006년까지 우리 정부는 경계획정의 기점을 ‘독도’가 아닌 ‘울릉도’로 설정하여 협상에 임했다. 이에 반해 일본은 그들의 기점을 처음부터 우리의 ‘독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전제에서 진행된 협상은 타결될 수 없었고, 우리 정부는 2006년 9월에 열린 제6차 회담에서 비로소 경계획정의 기점을 ‘울릉도’에서 ‘독도’로 전환시켰다. 이후 지금까지의 관련 회담은 순조롭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뚜렷한 해결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또 있다.
바로 한일어업협정이다. 한일어업협정은 1965년 6월 22일 체결해 그해 12월부터 발효된 한일어업협정과 이 어업협정을 파기하고 1998년 11월 28일, 한일 양국 사이에 다시 체결해 이듬해 1월 22일부터 발효된 신한일어업협정이 있는데, 문제는 새로이 체결한 1998년의 신한일어업협정에 있다.
이 협정에서 양국은 독도를 포함한 영역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하였다. 한일 양국이 각국의 해안선에서 200해리의 EEZ을 긋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발생하는데, 이 겹치는 수역을 EEZ가 확정되기 전까지 이 부분을 중간수역(일본에서는 ‘잠정수역’이라 함)으로 설정한 것이다. 게다가 이 수역 속에 들어 있는 독도에 대해 양국은 영유권 문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즉 영유권 문제는 추후 해결하기로 하고, 협정에는 독도를 지명으로 표기하지 않는 대신 좌표로만 표기하였다.
결국 우리의 영토가 분명한 독도를 두고, 우리 정부는 당당하지 못했다.
독도를 기선으로 하는 EEZ를 확보하지 못했고,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킴으로써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이 한잉어업협정을 폐기하고 재협상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둘째, 독도에서 자고, 먹고, 마실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독도에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독도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독도 선착장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 때문에 많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일반 국민의 경우 독도의 동도 선착장에 상륙을 하게 되면 사진촬영을 위해 필요한 시간 외에는 더 이상 섬에서 머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관광을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렵게 도착한 독도에서 푸르른 동해 바다를 바라 보면서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거나, 가벼운 식사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005년 4월 18일 독도가 일반에 개방된 이래 누적 관람객 수가 8년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고, 2016년 이후 매년 20만명 이상이 방문하여 금년 10월 현재 218만 5,179명이 독도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독도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도에 머물며 산진 한 장 찍은 이외의 추억은 거의 가지지 못했다. 육지에서 독도까지 찾아가자면 상당한 시간과 경제적 비용이 필요한 만큼 독도를 방문한 국민들이 독도에서 좀 더 소중한 추억을 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000년 당시 한나라당에서 독도 개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개발의 당위성을 두고 논란을 펼친 적이 있었다.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팽팽했는데, 찬성측에서는 80년대 국제 해양법이 변경된 이후 현상유지에서 공격적인 해양정책의 추진이 필요하고, 독자적인 개발 자체는 나쁠 것도 없고 문제도 없으므로 한일관계와 관계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서는 관광지 조성으로 영유권이 굳어지는 것이 아니며, 난개발로부터 독도를 보호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진정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현재 독도는 ‘문화재보호법’ 제25조의 규정에 의해 1990년 8월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천연보호구역’,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1990년 8월 건설부 고시로 지정된 ‘자연환경보전지역’, 그리고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 제4조에 의해 2000년 9월 환경부 고시로 지정된 ‘특정도서’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섬이다.
독도의 난개발을 방지하는 문제도 법적인 보호장치를 통한 보전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독도를 찾은 국민들이 독도에서 보다 의미있는 호흡을 하고, 가슴속에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에서, 선착장에 내리기 무섭게 기념사진 촬영을 끝내자마자 독도를 떠나야 한다면 독도를 다시금 찾아가고픈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독도를 방문하고 독도에서 동해의 정기를 가슴에 담으면서 독도에서 자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하여 다시금 독도를 찾고 싶어지도록 하는 묘안이 필요하다.

셋째, 전문가를 양성하라.
먼저 교훈적인 사례를 몇가지 들어본다.
제2차대전 종결과정에서 1946년 6월 선포했던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1033호(일명 ‘맥아더 라인’)의 철폐를 앞두고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반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한국 정부는 1951년 7월 26일 각서를 보내 맥아더 라인을 존속을 요구하였다. 이보다 며칠 앞선 같은 해 7월 19일 당시 양유찬 주미대사가 미국무부를 방문하여 ‘독도·대마도·파랑도’를 한국령이라고 주장하는 요구서를 건넸다.
이미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밝힌 것처럼 대일강화조약 초안 작성과정에서 1949년 11월 2일까지의 제5차 초안까지 한국 영토로 명기되어 있었던 독도가 1949년 12월 29일의 제6차 초안에서 일본 영토로 변경되었다가 1950년 8월부터 1951년 9월 8일 최종 타결까지 독도가 누락되어 버린 상황에서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독도 문제가 흔들리며 정리되어 가고 있던 흐름 속에서 1951년 8월 10일 당시 미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였던 러스크의 명의로 미국 정부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한다는 서한을 보내온 시점이었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서한은 당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던 시볼드의 역할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었다.
양유찬 주미대사가 건넨 요구서를 받아든 미국무부 관계자가 ‘파랑도’라는 금시초문의 섬이름에 대해 “이 섬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어오자 한국측의 한 외교관이 파랑도의 위도와 경도를 말하지 않고 “울릉도 부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문답을 주고 받은 한달 후인 8월 10일 “독도는 일본령, 파랑도에 관한 문의는 기각”이라는 답변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두 번째 사례이다.
지난 1999년 2월 5일 한일 어업실무협상이 타결되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할 수 있는 규모가 화정되자 전국의 어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관련 장관의 퇴진과 한일어업협정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의 한일어업협정 실무협상에서 해양수산부는 우리 어선들의 업종과 어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협상에 나가, 우리 대형기선저인망 업종의 주력선단인 ‘쌍끌이 선단’ 250여척이 일본측 수역 입어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연간 3,000억원의 어획고를 올리는 주력선단이 조업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냉동오징어와 활오징어의 어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조업기간을 일본측에 제시하여 활오징어 성어기인 3~6월이 조업기간에서 누락됨으로써 연간 2,000억원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했다.
이같은 사태는 결국 당시 김선길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질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위의 두 사례에서 우리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국가이익을 결정하는 일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이미 독도 관련 인물을 소개하면서 밝혔지만 일본의 독도 전문가인 가와가미 겐죠와 츠카모토 다카시는 모두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동안 독도 관련 업무를 전담하면서 나름대로의 전문적 식견을 쌓았고, 그 식견을 바탕으로 독도문제에 앞장서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직사회는 일정기간 근무를 하게 되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른 업무를 맡도록 하고 있다. 물론 비리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한 분야의 업무를 오래도록 전담하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문적인 식견이 요구되는 업무에 있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넷째, 영토문제는 장기적으로 대비하라.
지난 2003년 중국 언론에 의한 공개로 논란이 되었던 동북공정을 떠올린다.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는 '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공정)'이다. 간단히 말해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이다.
당초에는 2006년까지 5년을 기한으로 진행되었으나, 그 목적을 위한 연구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보듯이 영토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리고 역사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우리의 영토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랜 역사 속에 배어있는 모든 진실을 토대로 차분하게 풀어 나가야 한다.
현안으로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독도 뿐만 아니라 대마도, 간도, 연해주 등 우리의 조상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지역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확인하고, 그러한 사실을 토대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국가적 차원에서의 뒷받침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영토문제는 국가 존립의 근본이기에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대비해야 한다.

2019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일본의 초중고교에서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의 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된다. 이러한 교육이 시작되면 우리 정부는 어떠한 태도를 보일까?
독도를 생각하면 여전히 답답하고 허전한 마음이다.

중간수역 속에 들어 있는 독도 (출처 : 시사상식사전)
중간수역 속에 들어 있는 독도 (출처 : 시사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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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순 2018-12-17 16:12:32
박사님의 제안에 적극 찬성 합니다...도둑넘들이 큰소리 치는 세상이라지만 왜 이렇게 찍소리 못하고 강건너 불구경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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