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배나눔선교재단 김문배 이사장

문배나눔선교재단 김문배 이사장

김문배 이사장, 다부진 체구에 시원시원하고 소탈한 성격의 그는 평범한 이웃집 선생님처럼 정겨웠다. 소탈함이 내면에 깔렸지만, 명쾌한 논리와 시원시원한 입담은 상대를 빠져들게 하였다.

그 가운데 엿보인 김 이사장의 상생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철학은 왜 그여야만 하는지, 또한 그이기에 가능하다는 미래 청사진이 그려졌다.

지속된 성장뿐만 아니라 이웃 및 사회적약자들 간 파트너쉽, 즉 진정성과 인성을 강조하고 강요보다는 이해를, 일방적 성장보다는 나누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사회공헌에 앞서 항상 사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그는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따뜻한 사회인의 모습들을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강화가 현시점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과제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희망의 씨앗을 다시 틔워야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가진 것을 양보하는 기부와 봉사, 사회공헌 활동이 지속되는 세상 염원

‘큰 형님이 어느 날 시골 5일장에서 소고기와 쌀을 사왔다. 그날 저녁 온 가족이 소고기 국에 쌀밥, 정말 동생들은 난생 처음이다. 배부르게 잘 먹었다. 60여 년 전, 그 당시 아침에 보리밥 점심은 찬밥에 물 말아 된장에 고추장 찍어먹고, 저녁은 굶거나 밀가루 수제비 죽이다. 이것도 잘 사는 집의 형편이다. 소고기 국에 쌀밥은 잔치집이나 초상집, 제사 지내는 집에서나 얻어먹을 수 있을 정도니 온 가족이 큰형님께 무척 감사했고 특히 동생들은 큰 형님이 희망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또 큰 형님은 소고기에 쌀, 그 다음날엔 신발, 양말, 옷을 가지고 와 동생들은 신바람이 났다. 큰 형님 말이면 무조건 따르고 순종했다.10여 년 전 큰 형님은 농사짓기 싫고 일하기 싫고 가난이 싫다며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집을 나갔다. 들리는 소문에 학생운동하고 노동운동 하고 데모하고 공산주의 사상 탐구하는 일에 몰두하다 징역살이도 하고 쫓기는 신세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형이 갑자기 10년 만에 나타나 온 가족, 특히 동생들과 동네 젊은 청년을 상대로 돈을 물 쓰듯 하고 있다. 동생들은 큰 형이 꿈이고 한 없이 존경하고 있었으나 어느 날부터 아버지 어머님은 밤잠 못자고 근심걱정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큰 형님이 부모님 몰래 동네 앞 논과 마을 뒷산에 있는 밭을 팔아 그 돈으로 가족은 물론 동네 젊은 청년들에게 온갖 인심을 사고 지지 세력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동생들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농사일 시키고 누나나 여동생들은 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만 시키고 굶고 해서 피와 땀으로 마련한 논과 밭을 10년 만에 나타난 큰 형이 다 팔아버리고 이제 거지신세가 되어 가고 있다.’ 문배나눔선교재단 김문배 이사장은 "이것이 현재 우리나가라 처한 상태입니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1960년도 초 국민 소득 70불이던 우리나라를 국민 소득 30,000불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김 이사장은 질문을 던졌다. 나라 경제 건설에 외면하고 음지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김일성을 찬양하는 주사파 단체와 데모와 고속도로 바닥에 누워 경제 발전을 방해했던 그 세력들일까? 아니다. 김 이사장은 삼시세끼 밥을 먹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으나 꿈과 비전을 갖고 건설현장과 공장, 그리고 직장 등 저마다의 일터에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6-70 평생을 오직 절약, 근면 저축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고 경제 발전의 주역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진정한 나눔의 가치와 의미를 확산시키다

김문배 이사장은 1971년도 말 백마부대로 파병한 파월장병으로 14개월 동안 근무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완전히 미국 원조에 의지했던 때라 미국의 파병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과 협상하여 우리 장병들도 미국 장병과 근사한 수준의 봉급·수당을 받도록 지시하여 그것이 관철되었다. 당시 김 이사장이 병장으로 월남에서 받았던 봉급이 미화 57불. 그 외 수당 등을 합한 수백 불은 서울에 있는 중앙 경리단으로 송금되었고 피와 땀의 대가는 경인 전철 건설과 경부 고속도로 건설, 또 전방의 모든 무기가 M1(엠원)이나 칼빈에서 M16(엠십육)으로 교체 되는데 보탬이 되었다.

김 이사장은 이후 1977년 3월에 포스코, 당시 국영 기업인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에 입사하고 1994년도에 퇴직 했다. 워커 신발에 작업복 여기에 ‘하면 된다’는 군인정신으로 원가절감과 이익창출에 온 몸과 마음 다 받쳐 일하고 ‘우리의 이익이 국가를 위한다’는 애국심으로 조업 시작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익을 내는 회사로 만들었다. 이것이 결국 품질 좋고 저렴한 가격으로 철강(Steel)을 생산할 수 있었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했다. 포스코 철강이 있어 한때 세계 제일의 조선업 그리고 세계 유수의 중공업 그리고 자동차 산업, 전기 전자산업이 가능했고 이와 같은 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우리 경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시켰다. 김이사장은 대통령과 정부, 기업, 그리고 국민이 오직 하나의 목표를 갖고 한마음으로 단결한 덕분에 오늘날 경제대국을 만든 것이라고 자부한다.

김문배 이사장은 직장생활과 회사 경영 등을 거치고 하나님이 주신 재물의 은사가 더해져 100억 이상의 큰돈을 소유하게 되었다. 2005년 6월 부터 10여 년 간 약 33억 상당의 개인 재산을 매월 수백 명의 불우한 이웃 등 소외 계층에 월 2500만원~3000만원 상당을 나누었다. 2015년 11월 9일에는 전 재산인 약 100억 상당의 상가 빌딩과 임대소득 월 4천만 원을 완전히 출연하여 비영리법인인 ‘문배나눔 선교재단’ 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매월 정기적인 나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8년 10월의 경우 323명의 개인 및 단체에게 26,688,470원을 후원하였고, 이중에는 전국 45개 구치소 및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의 영치금 및 물품 후원, 정기후원, 그리고 재소자 가족의 정기후원 등 총 217명에 대하여 11,968,470원이 10월 후원금에 포함되어 있다.

김 이사장의 이러한 나눔 활동을 펼치게 된 이유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2005년 10월 성령체험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아내는 약 4년간을 갑상선암과 위암, 난소암으로 고생하다 그의 곁을 떠났다. “지금의 성공은 아내의 내조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아내가 투병중에 ‘내가 죽어서라도 당신을 구원 시키겠다’고 단 한마디의 유언만 남겼다. 아울러 김이사장이 가진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이것을 다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강력한 성령님의 인도가 있었다.” 고 말했다.

정치와 사회, 경제 등 모든 곳에 정의와 평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열망

김문배 이사장은 “지금까지 나라 경제발전의 현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쌓아온 결실의 열매를 필요한 사람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있건만 지금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라고 반문했다. 이어서 그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정치와 사회는 대혼란 상황이라고 정의 내렸다. 혼돈 속 좌파 세력에 의해 가을 단풍같이 붉게 물들어 가고 경제는 반 토막이 나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가 말살되어 가고 있음을 한탄했다.

“국민의 대부분은 우리가 곧 후진국이 될 것이고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이는 희망을 잃고 꿈과 비전이 없습니다. 용기와 열정도 없습니다. 인내도 없습니다. 부모와 노인을 대적하고 성격이 포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이 대한민국이 대마초를 입게 물고 고속도로를 역주행 하고 있는 술 취한 사람과 같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 합니까. 야당을 욕하고 보수 세력을 욕하고 집권 세력을 욕하며 다음 선거 때 보자하고 앉아 있으면 해결됩니까. 개구리가 따뜻한 물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삼킨다 했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앉아있다 개구리 마냥 삼키면 어떻게 됩니까. 생명이 없는 육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고 식권 받아 한끼 두끼 얻어먹고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문배 이사장은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걱정하는 사람,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걱정하는 사람, 공산주의를 두려워하는 사람, 그들은 다 동지요 친구라고 말했다. 이어서 개구리 마냥 따뜻한 물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그들을 깨워서 통속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지난 2007년도에 심었던, 그러나 지금은 모진 풍파로 죽어가고 있는 그 희망의 씨앗, 희망의 나무를 다시 찾아 우리가 보호하고 방어하여 뚝을 쌓고 바람을 막아 꽃이 피고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추수 할 때까지 돌보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우리도 우리가 심은 씨앗을 우리 스스로 돌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00억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부자입니다. 사람의 능력이나 지혜로는 100억을 모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재물에 대한 은사가 없이는 불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 즉 불우한 이웃에게 돌려야 합니다. 옛날엔 동네에 부자가 한명만 있어도 그 동네에는 굶을 사람이 없다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이 부자가 개인 재산을 나누지 않고 자기 것이고 자기 능력으로 획득한 것이라 믿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과 권력으로부터 무시당하고 냉면 한 그릇도 떳떳하게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자기 개인 재산을 본인이 직접 고아나 과부, 나그네를 찾아 몸소 나누어 준다면 본인의 기쁨은 말할 것 없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와 존경받고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고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큰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문배 이사장은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는 세상, 갈등 없고 사랑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하며 정부와 기업 국민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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