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검무보존회 장효선 회장

[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 동학의 교조인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이 무극대도의 기쁨을 칼춤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훗날 이름 붙여진 용담검무가 바로 그것. 최제우 선생이 무형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동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유형적 에너지가 있는 검의 기운을 얻어 본인이 깨달은 무극대도를 좀 더 널리 알리고자 1861년 남원 교룡산성 선국사내 은적암에서 8개월 동안 은거하며 검결을 직접 짓고 추었던 용담검무는 외세의 무분별한 침략에 맞서 검이 가지고 있는 상무정신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시작되었고, 검으로 동학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수련하고 동학 교도들에게 가르치던 중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가 관으로부터 역모와 혹세무민했다는 누명을 쓰고 41세인 1864년에 처형당하게 됨으로서 용담검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용담검무는 검무로서의 가치는 물론 상무적 가치와 함께 무예적 기교도 함께 지니고 있다. 또한 신체균형 수련과 함께 정, 중 동의 동작을 함께 수련할 수 있어 폭 넓은 연령층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효용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검무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천되면서 잃어버린 제의적면과 무예적인 면을 그대로 간직한 용담검무는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성과 함께 검무로서의 가치, 무예로서의 가치, 생활체육으로서의 가치 등의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인 장효선 선생은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으로 이어지던 용담검무를 전수받아 40여년여의 검무수련과 학문적 부분으로도 계승·전승하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장효선 선생 집안의 칼춤 내력은 무척이나 길다. 거슬러 올라가면 수운 최제우에까지 닿는다. 고조부는 고향인 남원에서 목수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수운 선생께서 거처하신 은적암을 고쳐드린 게 인연이 돼 검무를 배우게 됐었다고 한다. 고조부는 목검을 깎아 최재우 선생께 드리고 최재우 선생은 검무를 고조부께 가르쳐주신 것으로 검무가 증조부-조부-부친을 거쳐 장효선 박사까지 4대에 걸쳐 이어졌다. 용담검무는 동학의 근본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장효선 선생은 “철이 없었을 때는 재미로 시작한 검무였지만 이제 인생이 됐다. 어린나이에 검무를 배웠지만 1970년대에는 비교적 틀이 잡히는 형태를 갖추었고 1980년 부친의 타계 후 사명감을 가지고 용담검무의 계승에 매진하고 있다”며 “동학의칼춤 용담검무의 원형을 지키고 보존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 했다. “용담검무의 근본은 동학이다. 동학의 근본정신은 민족성, 동질성. 인간평등이다. 이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으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의미”라고 역설했다.

장효선 회장
장효선 회장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을 위해 한빛예무단을 창단해 극단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한 장 선생은 계백장군, 온달장군, 광개토대왕 등 역사인물들을 검무극으로 30여 년간 줄기차게 재현해 왔다. 그동안의 무대공연 횟수가 1천여 회에 이를 정도이며 서울정도 600주년을 맞은 1990년에 서울 정동극장에서 용담검무를 최초로 공연한 데 이어 2000년 용담검무 계승·복원 학술발표회 개최, 2006년 사)용담검무보존회 설립, 2010년 KBS 다큐멘터리 경술국치 100주년 출연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용담검무가 자신의 영혼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하는 장효선 선생은 “지난 IMF때 포기하느냐, 계속 이 길을 가느냐의 힘든 선택의 기로에 있기도 하였다. 2004년 홀로 쓸쓸히 포기할까 마음먹었던 시절, 용담검무보존회 창립 계기로 용기와 희망을 찾았고 그때부터 동영상. 교육자료 등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서 용담검무는 내 삶의 사명감’이 됐다.”라고 전했다.

장 선생은 용담검무의 정신과 기법을 저서인 <달 품은 용천검-용담검무>과 자전소설 <무심(武心)> 등을 통해 정리했으며, 지난 2015년에는 <용담검무의 춤사위와 검결의 문화적 가치에 관한 연구>로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장효선 선생은 “용담검무가 예술로 승화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선 호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코로 충분히 들이 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자연호흡은 몸과 검이 좌우로 회전하거나 연속동작을 할 때 사용한다. 강한 힘을 내는 동작에선 양의 호흡을 한다. 이 호흡은 코로 충분히 들이 마신 뒤 3분의1을 입으로 내쉼과 동시에 단전을 등 쪽으로 끌어 당기며 호흡을 멈추면 강한 기운이 단전에 모인다.”고 말했다.

장효선 선생은 용담검무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련하기위하여 한 단계 더 진전시킨 검예도를 1987년 창안하기도 했다. 강화된 한국적 수련법으로 자아를 일깨우고 인격을 완성하는 ‘검선일치’를 추구하며 검무의 무예성과 예술성, 건강성을 한데 모아 용천검이 꿈꾸는 무극대도를 찾기 위해서다. 현재 한빛예무단 대표, 한국검예도협회 회장, 세계검예도연맹 총재, 용담검무보존회 회장, 세계태극기공연맹 총재 등을 역임하고 있는 장효선 교수는 용담검무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전북지역과 동학의 본고장인 남원을 중심으로 미국 뉴욕에도 용담검무전수관과 지회를 운영하며 용담검무를 전수하고 있다. 특히용담검무 전수자 양성 교육을 위해 지난해 5월 용담검무전수관 남원지회를 열고 30여 명의 전수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명맥이 끊길 뻔 했던 용담검무를 다시 한 번 세상에 펼쳐 보이며 한국전통무예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는 장효선 선생. 민족혼의 상징인 용담검무는 한국전통무예와 문화예술의 쾌거로서 우리 민족의 기운을 회복하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그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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