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 학자...양심은 사라지는가

지난 2012년 12월 16일 타계한 일본의 독도 전문가였던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교수는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외무성 자료를 읽어보니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사실 중 형편에 맞는 부분만 끌어다 쓰고 불리한 사실은 아예 무시해버렸다. 일방적이고도 조잡한 내용이었다”라고 그러면서 나이토 교수는 약 20년간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외쳤다.
그는 1993년 시마네(島根)대를 퇴직하고 돗토리(鳥取)대로 옮겼는데, 돗토리대 향토사료관에 독도와 관련한 희귀 자료가 잔뜩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학자로서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관련 자료중 1695년 도쿠가와 막부의 질의에 대해 돗토리번(藩)이 “울릉도와 독도는 돗토리 땅이 아니다”고 답변한 것을 근거로 도쿠가와 막부가 1696년 1월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렸음을 확인하였다. 나이토 교수는 이때부터 약 20년간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2012년 9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학자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돗토리번의 문서를 본 이상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고 답한 바 있다.(중앙일보 2012.12.24. 기사 참조)
일본인 학자가 일본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나이토 교수처럼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주장한 학자가 더 있다.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한 학자는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 1905~1977)이다. 야마베는 도쿄에서 발행되는 시사 월간지 「코리아 평론」1965년 2월호에 실린 ‘독도 문제의 역사적 고찰’이란 글에서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의 영토편입 조치는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도문제는 1905년 일본의 영토 편입이 정당한 것이었는가를 문제시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면서, 당시 일제가 1904년 한일의정서를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사실과 같은 영토편입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1904년 시마네현 어민들은 독도를 조선 영토로 보고 일본 정부에 임대 요청을 하러 도쿄를 방문했는데, 농상무성장관 등을 만난 뒤 ‘임대’가 아니라 ‘영토편입 요청’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사실은 1923년 발행된 시마네현지(縣誌)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야마베는 독도문제 외에도 「코리아평론」 1964년 10월호에 ‘민비사건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명성황후가 ‘사체 능욕’을 당했다고 밝혀 “명성황후 능욕설”의 원조가 되기도 하였다.

 야마베에 이어 가나가와대 교수였던 가지무라 히데기(梶村秀樹, 1935~1989)가 독도문제에 대해 일본을 비판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1978년 ‘다케시마=독도문제와 일본 국가’라는 논문에서 “1905년 2월 22일자 시마네현 고시 40호에 의한 영토편입 조치는 당시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시 또는 통고를 하여 한국에 이의 유무를 확인하지 않았던 편입절차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독도 인지는 문헌상으로 한국이 일본 보다 200년 빠르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가지무라는 전후 일본 정부가 독도문제에 대해 “일본은 100% 정당하고, 한국은 100% 오류라는 논리를 만들어 일본 국민의 의식을 잘못된 논리에 묶이도록 하였다”고 언급하였다.
가지무라는 전후 일본에서 한국사 연구를 주도했던 역사학자로 재일 조선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그는  1968년 2월 20일 밤 시즈오카 현 시미즈 시에서 온천 여관 후지미야에 들어 투숙객들 16명을 인질로 88시간 동안 농성한 사건의 주인공인 김희로씨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였고, 지문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할 인물인 일본 교토대 교수 호리 가즈오(堀和生, 1951년생, 현 교토대학 명예교수)가 있다. 호리 교수는 1987년 ‘1905년 일본의 다케시마 영토편입’이라는 논문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호리 교수는 일본 정부가 섬에 대한 영토 주권을 확립한 1876년의 가사와라 섬을 사례로 들었다. 일본 정부는 오가사와라 섬에 대하여 영토편입 조치를 취할 때, 이 섬과 관계가 깊은 영국, 미국 등과 여러 차례 협의하여 양해를 얻은 후에 편입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구미 12개국에 이 섬의 편입조치를 통고했다.
그러나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은 고시 40호로 당시 리앙쿠르섬이라 불리던 독도를 다케시마로 명명하고, 이 섬을 오키(隱岐)도사(島司) 소관으로 고시했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의 공시 조치(관보 게재)를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한국 정부에 대한 조회도 소홀히 하고, 통고마저 하지 않았다.
더하여 호리 교수는 한국이 15세기부터 독도 영유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일본은 1877년 당시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였다고 하면서 태정관 지령을 공개하였다.
호리 교수는 2017년 교토대학교대학원 경제학 교수에서 정년퇴직하였고, 현재는 동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 학자들중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주장을 분명한 논리를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밝힌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입장을 밝힌 양심적인 일본 학자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이제는 호리 가즈오 교수 정도만 생존해 있다. 이미 밝힌 것처럼 내년부터 일본의 초중고에선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의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법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성장할 현재의 일본 젊은이들에게서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양심적인 학자들이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최근 언론에서는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인 우리의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방송 출연 모두가 취소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취소 결정도 방송 출연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세계적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취소 결정은 BTS 멤버중 지민이라는 가수가 1년전 입었던 일명 ‘광복절 티셔츠’가 이유였다고 알려졌다.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측이 역사적 사실 중 형편에 맞는 부분만 끌어다 쓰고 불리한 사실은 아예 무시해버리는 방식으로 한일관계를 바라본다면, 향후의 한일관계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11월!
지금껏 독도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었던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독도의 올 겨울은 또 얼마나 추워지려나?  

문제의 BTS 지민 광복절 기념 티셔츠-출처: 네이버 이미지
문제의 BTS 지민 광복절 기념 티셔츠-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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