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나고 문명은 흐른다

[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오늘날 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을 거쳐 다양한 장르와 각양각색의 예술적 개념이 혼재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를 산출하는 것, 현실을 재현·재생하는 것, 형식을 창조하는 것 등과 같은 나름대로의 정의가 그것이다. 작가 개개인의 정서가 중요시되어 한 가지 형식이나 사조가 주류를 이루던 과거와는 달리 전통회화와 사실주의, 추상주의와 팝아트, 설치와 퍼포먼스 등 형식 파괴에 가까운 다양성과 의미 부여가 용인되고 있다.

‘예술가는 있어도 장인은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국내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세계를 경주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다변적인 현대 미술계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정립해 가고 있는 기옥란 작가가 그 주인공. 국내 화단의 역량 있는 여류작가로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을 쏟으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는 기옥란 작가가 자신만의 예술적 감수성이 담긴 예술세계를 꽃피우며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옥란 작가
기옥란 작가

기옥란 작가의 작품 세계는 ‘트랜스휴먼’(trans human)이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자크 아탈리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제시한 ‘트랜스휴먼’이라는 개념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적 삶을 뜻하는 노마드(nomad)적 가치와 농경 사회로의 발전 이후 세계의 문명을 이룩해낸 정착민적 가치의 융합이자 변증법적 사고의 경로를 거쳐 탄생한 신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트랜스휴먼은 인공지능이나 기계 장치를 빌어 인간이지만 인간 이상의 정신적, 신체적 초월적인 능력을 갖는 새로운 인간으로 억압된 삶의 경계를 넘어 초월을 꿈꾼다.

트랜스휴먼
트랜스휴먼

“고구마 뿌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인간과 자연, 현실과 가상, 정신과 물질, 남성과 여성, 인간과 물질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는 기 작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그리고 인간성 회복과 평화, 신인류에 대한 신념으로 유위(有爲)에서 무위(無爲)로, 도시에서 자연으로, 인간에서 자연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복잡성에서 단순성으로 사유의 축을 옮겨야 하고 존재세계와 인간이 화해하는 세상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과 조형감각으로 유목과 정착이 낳은 21세기의 신인류 ‘트랜스휴먼’을 통해 소통과 화해 그리고 관계, 나눔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기옥란 작가는 지난 2010년부터 ‘트랜스휴먼’을 주제로 다양한 오브제와 구조적 조형요소들을 활용하여 예술적 사유로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인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를 통해 생명에 대한 충동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극복을 바라고 있는 대중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 그리고 삶의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 작가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고 대응하며 많은 여행과 예술 교류를 통해 세계미술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깨달음과 감성을 투영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As클레오파트라
As클레오파트라

기 작가는 새로운 인류 트랜스휴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기호와 이미지, 핸드폰, TV,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패션, 제품디자인, 공간디자인 등 소비시대를 대변하는 4D, DNA(염색체),디지털(Digital), Design(디자인), Divinity(신성, 영성)과 3F, Feeling(느낌, 감성), Female(여성성), Fiction(상상력)을 작품의 큰 줄기로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기 작가는 “21세기는 전통적인 남성 가부장적 사회와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아니라 감성과 상상력을 겸비한 여성 중심의 디지털 혁명 시대다. 즉 나노, 바이오, 줄기세포, 생명공학시대에 생명 존재의 지도인 DNA(염색체), 요즘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합성어인 디지로그라는 말도 있지만, 다차원의 상호 소통시대의 디지털(Digital), 현대사회의 진화를 통해 발전해가는 많은 사회적 유산들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디자인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어우러짐의 미학
어우러짐의 미학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 초지성을 가진 21C 미래의 새로운 인간 ‘트랜스휴먼’과 신유목민 네오노마드 시리즈 외에도 ‘관계와 소통을 위한 변주곡’, ‘공간에 대한 사유’, ‘원형으로부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위한 변주곡’ ‘은하수와의 조우’ 등 유사한 작품세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나가면서도 다양한 사유를 통해 더욱 깊이 있는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신경회로망의 복잡함 속의 조화처럼 직선과 곡선의 만남, 인종과 인종의 만남, 문명과 문명의 만남, 이념과 이념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과 더불어 우리 안의 통일을 지향하고 하나뿐인 지구촌의 평화를 모색해 보고자 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더불어서 기작가는 “욕망과 소유와 결핍과 질투의 시선으로 자유를 누리며 끊임없이 새로운 기호와 이미지를 사냥하고 소비하며 유랑과 정착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키보드와 마우스, 디지털의 비트를 통하여 끊임없이 교감하고, 직관적 판단으로 정보를 소통하며 정보의 바다를 유랑하는 테크노피아속의 고독한 현대인들의 모습도 때로는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기 작가가 이러한 작품 창작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리좀(rhizome)’으로 대표되는 관계 다발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에 의해 발표된 철학 개념인 리좀은 이분법적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이고 초월적인 구조와 대비되는, 내재적이면서도 배척적이지 않은 관계의 모델로서 사용되었다.

공간을 위한 변주곡
공간을 위한 변주곡

기 작가는 “물감뿐만 아니라 캔버스와 금속 마스크 등에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을 연결해주는 컴퓨터 부품이나 천연섬유 등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해 자연적인 식물적 물성과 석유 부산물에서 나온 키보드나 지극히 인위적인 인공물의 첨단 전자 부품들을 충돌시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물질 즉 인간과 기계문명과의 조화와 화해를 꾀하며. 극도로 단순화된 리드미컬한 구성속에서 비대칭적인 기하학적 표현과 상징적인 기호를 통해 끝없이 진화해가고 있는 삶과 예술을 환기시켜 표현하고자 한다.”고 한다. 때문에 물질문명사회의 모든 소재들은 그녀의 소재가 된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컴퓨터 부품들은 하나 하나가 그 조형미가 아름답고 상징성이 뛰어나다.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해 보이는 네모난 컴퓨터 속에는 메인보드나 그래픽카드, 메모리 칩, 키보드, USB , CPU 쿨러 등 많은 부품들이 있는데 키보드는 각각의 명령어가 다르며 수많은 언어를 가진 전 세계인과 짧은 시간에 소통할 수 있다.

또한 USB와 메모리 칩은 끝없는 무한대의 복제가 가능하기도 하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것처럼 포맷해 버릴 수도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여는 열쇠이며 손안의 작은 도서관이자 마음의 창과 같다.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기도 하고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우리 사회의 현재 또 미래 사회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작업을 할 때마다 수많은 영감과 메시지를 전해준다. 메인보드는 마치 잘 짜여진 미래의 거대한 우주도시 같은 느낌을 주고, 컴퓨터의 열을 식히는 쿨러는 수많은 지식 정보 습득과 일상에 지친 현대인 및 우주인들에게 마치 가을 바람 부는 시원한 휴양림 같은 대나무의 마디 같은 삶의 휴식을 주는 듯하다.”는 기옥란 작가. 기 작가는 언어와 상징과 기호와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이를 해석하는 자는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들은 보이지 않은 수많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다.

변화무쌍한 드넓은 새벽 하늘과 눈부신 석양, 구비구비 아름다운 산 능선들과 나무들, 사시사철 피고 지는 예쁜 꽃들, 풋풋한 청보리와 연두빛 카페트 같은 벼가 익어가는 들판, 안개와 철새들, 고뇌하는 수도승처럼 흰눈을 이고 있는 겨울나무들과 나즈막한 음악이 있는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기 작가의 예술적 영감을 충만하게 한다. 자유로운 사고 속에 새벽이슬처럼 영롱한 눈망울들과 함께 벼이삭들처럼 자연과 함께할 때와 가볍게 산책할 때, 고요한 새벽시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그녀의 예술적 감성은 자연스레 녹아든다.

동‧서양의 철학적 개념을 작품에 접목시키다 보니 많은 공부가 되는 것 같다는 기옥란 작가는 앞으로도 인간과 과학이 융합된 시대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에 10월과 11월 초대전과 대전아트페어 아트광주전 등을 앞두고 있으며, 내년 2월에는 프랑스 초대전과 앙데팡당(Independant)전, 가을쯤에는 미국 뉴욕 초대전도 예정되어 있다. 기 작가는 “작업실에서 보았을때와 전시장에서 본 작품은 확연히 달라 보인다. 좀 더 객관적으로 작품에 대해서 진지하게 감상하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관람자와 비평가와 작가의 피드백이 이루어져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제3의 창조적 지평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옥란 작가는 문화상품 등과의 다양한 방식의 콜라보를 기획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국내‧외 많은 작가들의 전시에 참여하며 눈여겨 본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 세상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더 넓은 세계관을 갖고 틈틈이 후학들을 가르치며 함께 봉사하고 소통하고 예술을 탐구하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좋아하는 첼로 연주와 시 공부를 통해 창의적 영감을 받아 더 좋은 작품들을 하고 싶고, 40회의 개인전과 45회의 국제아트페어에 참가해오며 전시활동을 해왔는데 그 열정을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할 계획”이라는 기옥란 작가는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이나 뉴욕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혹은 유럽이나 남미의 여러 미술관들을 가보면 주제나 표현법이 매우 다양하고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들이 많다. 우리도 늘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연구하고 고민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작가와 개성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때문에 후학들에게도 어떠한 특정한 장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 많은 시와 음악을 접하고 여행도 많이 경험하며 상상력과 다양성, 감성을 키울 것을 당부하며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본질적 재산은 ‘좋은 시간’ 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좋은 시간이란 각자가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것’ 이다고 기 작가는 말한다. ‘내 삶이 곧 내 메시지다’라는 간디의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작품을 통해 시와 음악, 꿈과 직관, 상상력이 있는 공간, 은유와 상징이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며 “골짜기에 머물러 있는 바람이 아닌 큰 산맥을 넘는 거대한 바람이 되길 원하기 때문에 항상 깨달음과 시대정신과 미적 감성을 잃지 않고 작업을 하고자 한다.”는 기옥란 작가. 피부색, 종교, 이념을 떠나 끝없이 진화하는 트랜스휴먼의 다양한 시각 이미지들과 모든 관계, 소통, 교감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들을 자신의 삶의 회화적 변주곡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녀가 지향하는 예술적 사유와 언어의 미학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보다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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