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년이 지난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 명인 장효선 박사에 의해 계승, 전승
167년이 지난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 명인 장효선 박사에 의해 계승, 전승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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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남원 교룡산성 내 은적암에서 최초로 추어졌던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가 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궁중 무예로부터 시작되어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의 칼춤 용담검무를 동학의검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전통무예 검예도가 있다. 전통무예 검예도가 있다.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생사를 초월하여 두려움을 없애는 무예로 신라시대 헌강왕이 신하 앞에서 스스로 춤을 추었다는 기록과 함께 신라의 화랑들이 훈련 또는 전투 중에 기량과 전력을 쌓기 위해 연마한 무예다.

명인 장효선 박사
명인 장효선 박사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으로 이어지던 용담검무를 전수받아 20여년여의 검무수련과 학문적 부분으로도 계승·전승하고 있는 주인공이 명인 장효선 박사다. 19세기말 조선, 당시 살기 힘들었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되었던 동학. 동학을 창시했던 수운 최제우는 서양의 강한 물리적인 힘을 물리칠 대책 방안으로 동학의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상무정신이 깃든 용담검무(龍潭劍舞)를 활용했다. 기록으로도 뚜렸히 존재하고 동학의 칼춤의 명맥이 끈어지지 않은 상태로 어렵게 면면이 이어져 167년 이 지난 오늘날 힘든 고비를 넘어 어렵게 계승·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무예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해 7살부터 검을 잡은 명인 장효선 박사는 “어릴 적엔 분별없이 칼을 휘둘렀고 재미도 있고 멋도 있었지만 계속 연마를 하다 보니 따라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게 무예에 입문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점차 검을 연마 하면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칼춤동작을 연마하며 몸에 익히고 행여 잊어버릴까봐 그림으로 그려놓기도 하고 동작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연마하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수련과정을 통하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검무의 동작들이 점차 숙달되고 몸에 무르익어 검무공연 무武, 무舞, 무無,를 1984년에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올리면서 한국의전통 무예와 검법 그리고 긴 칼로 추는 검무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세상에 내놓았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 나의 분신이 되어 검무의 동작과 움직임에 뜻을 실어 신명을 불러 일으켰고 검은 나의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장 박사 집안의 칼춤 내력은 무척이나 길다. 거슬러 올라가면 수운 최제우에까지 닿는다. 고조부는 고향인 남원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수운 선생께서 거처하신 은적암(隱寂庵)을 고쳐드린 게 인연이 돼 검무를 배우시게 됐었다고 한다. 고조부는 목검을 깎아 수운 선생께 드리고 수운 선생은 검무를 고조부께 가르쳐주신 것으로 검무가 증조부-조부-부친을 거쳐 장효선 박사까지 4대에 걸쳐 이어졌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남원은 장효선 박사에게 운명과 같은 땅이다. 경주 용담정에서 태어난 수운은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도(道)를 구하고자 10여 년 동안 전국을 떠도는 이른바 주유팔로(周遊八路)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1860년 경주에서 무극대도의 종교체험을 한 뒤 동학을 창도하고 용담검무를 제자들과 함께 추기 시작한다. 이듬해 남원의 교룡산성 은적암으로 은신한 수운은 이곳에서 비로소 동학과 용담검무를 완성하게 된다. 

장효선 박사는 수운 최제우가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6대조 최진립(崔震立) 장군의 기운을 이어받아 용담검무를 창안했다고 말했다. 최 장군이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앞장섰듯이 최제우도 쇠락해가는 국가 안위를 걱정해 동학을 창도하고 용담검무를 추었으나 혹세무민(惑世誣民) 좌도난정(左道亂政)의 죄목으로 체포돼 결국 대구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여준 수운의 결연함은 시대를 넘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취조과정에서 선전관이 검무를 추지 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며 회유했지만 수운은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라며 죽음에 결코 굴하지 않고 결국 처형을 당하였다. 전북 남원 교룡산성내 은적암에서 수운으로부터 보국안민의 정신을 새기며 용담검무를 배웠던 수운의 제자들과 동학인들은 스승이 역모의 누명을 쓰고 처형 당하게 되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숨어서 칼춤을 추던 사람들도 관군에게 발각되면 잡혀가서 혹독한 고문을 받거나 감영에 투옥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되자 검무는 숨어서 몰래 추는 춤으로 숨을 죽여야 했다. 

지난 1990년에는 서울 정도 600주년을 맞이해 서울 정동극장에서 용담검무를 최초로 공연했던 명인 장효선 박사는 1994년 파고다공원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목검으로 동학의칼춤, 용담검무를 시연, 2000년 용담검무 계승·복원 학술발표회 개최, 2006년 사)용담검무보존회 설립, 2010년 KBS 다큐멘터리 경술국치 100주년 출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용담검무가 자신의 영혼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하는 장효선 박사는 “지난 IMF때 포기하느냐, 계속 이 길을 가느냐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2004년 홀로 쓸쓸히 포기할까 마음먹었던 시절, 용담검무보존회 창립 계기로 용기와 희망을 찾았고 그때부터 동영상. 교육자료 등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서 ‘용담검무는 내 삶의 사명감’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용담검무의 정신과 기법을 저서인 <달 품은 용천검-용담검무>과 자전소설 <무심(武心)> 등을 통해 정리했으며, 지난 2015년에는 <용담검무의 춤사위와 검결의 문화적 가치 연구>로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순신장군, 최영장군, 계백장군, 온달장군, 광개토대왕 등 역사인물들을 검무극으로 30여 년간 재현해온 장효선 대표는 전통무예 동학의검 검예도를 창시하여 민족무예중흥에 기여하고 태극의 기운을 얻어 기(氣)를 순환시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자연치유 기수련법인 태극기공삼칠장을 창시하기도 하였다. 현재 한빛예무단 대표, 한국검예도협회 회장, 세계검예도연맹 총재, 용담검무보존회 회장, 세계태극기공연맹 총재 등을 역임하고 있는 장효선 교수는 용담검무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남원, 정읍, 서울, 명인아카데미, 명지대학교 등 전국 곳곳은 물론 미국 뉴욕에 용담검무전수관과 지회를 운영하며 용담검무를 전수하고 있다.

명인 장효선 박사는 “민족전통의 예능이나 기예를 계승, 전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지원이라도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기능을 가진 사람이 죽으면 계승이 되지 않고 소멸되어 버리는 우리 문화가 많습니다. 전통문화진흥법 등 관련법의 모호한 기준을 빨리 개선해서 제대로 전승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1861년 남원 교룡산성 내 은적암에서 최초로 추어졌던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가 맥이 끊어지지 않고 명인 장효선 박사에 의해 전승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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