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독도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마무리를 짓는 차원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 9월 8일 조인되고 이듬해인 1952년 4월 28일 발효에 들어갔다.
이 조약에는 독도의 귀속이나 처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독도 관련 조항이 누락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독도가 일본이 영유하는 섬으로 확정된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독도 영유권문제의 경위, 일본 ISSUE BRIEF 244호, 1994.4.12.)
일본이 독도 관련 명문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도 영유권의 근거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체결과정을 살펴본다.
강화조약이라 함은 평화조약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종결방식으로는 강화조약의 체결, 정복(征服), 적대행위의 전반적 정지 등의 세 가지가 있으나, 이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강화조약이다. 강화조약은 교전국 사이에 존재하는 전쟁상태를 끝내고, 평화관계를 회복하는 조건을 정하는 것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조약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2차 세계대전은 당시 미국, 소련, 중국 등의 국가가 지닌 다양한 상황들로 인하여 마무리 작업이 순조롭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대공황이란 어려움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겪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 하였다. 특히나 제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의 군사적 팽창 정책에 대하여 참담한 전쟁을 치렀던 미국은 소련의 지위와 역할이 급부상할 뿐만 아니라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패전국 일본의 군사적 재기와 보복을 방지하려는 정책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연합국의 중심국가였던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생기면서 이러한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일본의 로비로 인하여 강화조약의 체결은 전례없이 지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실질적인 종결을 위해 시작된 대일 강화조약 체결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을 하고난 1945년 9월 2일부터 조약에 대한 서명이 이루어진 1951년 9월 8일까지 무려 6년 1개월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전쟁의 최종적 마무리를 위해 맺어지는 강화조약의 체결기간을 감안할 때 대일 강화조약에 소요된 6년 1개월의 기간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장기간이 소요되었다.
다음 <표-1>에서 보듯이 19세기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전쟁에 있어 관련 전쟁 종결 후 조약을 조인하는데 소요된 기간이 최대 7개월을 넘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소요된 6년 1개월의 기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표-1> 전쟁 종결과 조약 체결

전 쟁 별 (시작~종료)

강화조약 (체결일자)

소요기간

비 고

1차 아편전쟁(1840~1842. 6)

남경조약(18428)

2개월

 

2차 아편전쟁(1856~1860)

천진조약(18586)

즉시

vs···

청일전쟁(1894. 2~1895. 4)

하관조약(18954)

즉시

 

로일전쟁(1904. 2~1905. 5)

포츠머스조약(1905. 9)

4개월

 

1차대전(1914. 7~1918.11)

베르사이유조약(19196)

7개월

vs··

2차대전(1939. 9~1945. 9)

샌프란시스코조약(19519)

61개월

vs48개국

 

강화조약을 체결하는데 있어 충분한 논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장시간의 소요는 강화조약을 체결하는데 있어 당초의 본뜻을 왜곡시킬 수 있는 여지를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체결과정을 독도를 중심으로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표-2>를 보면 강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미국측의 제1차 초안은 1947년 3월 20일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약 2년이 지난 시기이기 때문에 체결내용에 대한 충분한 점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제1차 초안에는 독도가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어 한국에 귀속된다는 내용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짐작해 본다면 독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한국에 귀속되어야 할 섬으로 조약 작성 관련국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독도가 한국에 속한다는 내용의 조약 내용은 독도의 경우 제1차 초안부터 제5차 초안이 제시된 1949년 11월 2일까지 아무런 변동사항 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독도의 한국 귀속과 관련하여 제5차 초안이 발표된 1949년 11월 2일 이후 당시 일본 정부의 정치고문으로 활약중이던 미국인 W. J. Sebald가 1949년 11월 19일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연합국측에 제출하면서 조약 초안의 내용에 변화가 일어났다. 시볼드는 미국의 안보적 고려를 내세우며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수정을 권고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같은 시볼드의 개입으로 인하여 미국이 제시한 1949년 12월 29일의 제6차 초안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에 포함된다고 규정하여 이전 1~5차까지의 사실이 완전히 번복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미국측의 입장 변화에 대해 조약 작성에 참여하고 있던 영국과 뉴질랜드가 이의를 제기한 결과로 제7차 초안부터 제9차 초안까지의 내용중에는 독도 관련 내용이 아예 삭제되었다.

이같은 과정을 거친 대일 강화조약 최종안은 1951년 9월 8일 조인되었는데, 조약 제2장(CHAPTER Ⅱ) 제2조(Article 2) (a)항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그리고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여 독도와 관련한 내용을 명확하게 밝히는데 최종적으로는 실패하였다.

<표-2> 대일강화조약 체결과정상 독도 관련 조항 변경 현황

 

구 분

독 도 관 련 조 항

1947320

[1차 미국 초안]

CHAPTER - TERRITORIAL CLAUSES

Article 4

Japan hereby renounces all rights and titles to Korea and all minor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Island, Port Hamilton, Dagelet(Utsuriyo) Island and Liancourt Rock(Takeshima).

[4] 일본은 제주, 거문도, 울릉도 및 독도를 포함, 한국모든 해안 소도들에 대한 모든 권리와 권원을 포기한다.

194785

[2차 미국 초안]

위와 같음

194812

[3차 미국 초안]

위와 같음

19491013

[4차 미국 초안]

위와 같음

1949112

[5차 미국 초안]

CHAPTER - TERRITORIAL CLAUSES

Article 6

Japan hereby renounces in favor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Saishu To), the Man How Group(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Tomaikai), Dagelet island(Utsuryo To, of Matsu Shima), Liancourt Rocks(Takeshima).

위와 같으나 1~4차 초안까지 [4]에서 규정하던 것을 [6]에서 규정

19491119

[일본 정치고문 Sebald 개입]

독도를 일본영토에 포함시켜야 한다수정을 권고하는 의견서를 연합국측에 제

19491229

[6차 미국 초안]

CHAPTER - TERRITORIAL CLAUSES

Article 3

1. the territory of Japan including the islands of the Inland Sea(Seto Naikai) ; Tsushima, Takeshima(Liancourt Rocks,

[23] 일본의 영토에 독도가 포함된.

195087

[7차 미국 초안]

[4] 4.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한국과의 관계는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에 의거한. 독도 조항 없음

1950911

[8차 미국 초안]

[4] 4.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한국은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의거한. 독도 조항 없음

1951323

[9차 미국 초안]

[3] 3. 일본은 한국에 대한 권리, 권원, 그리고 청구권을 포기한. 독도 조항 없음

195198

[최종 평화조약]

CHAPTER - TERRITORY

Article 2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s,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22] (a)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그리고 청구권을 포기한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일 강화조약 체결상의 진행과정은 조약에 담을 내용과 관련하여 최초에 의도하였던 사안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본질적인 내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전세계에 미친 피해와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최초의 내용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 문제는 너무도 가볍고 무책임하게 처리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근거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태도는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일본에 대하여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일 것이 아니라 독도의 역사와 본질적 내용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올바른 교육이 절실하다는 필자의 마음은 과욕일는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고 있는 요시다 시게루 일본총리와 관료들(자료사진 출처 : 위키백과사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고 있는 요시다 시게루 일본총리와 관료들(자료사진 출처 : 위키백과사전)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