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효란 작가

오늘날 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을 거쳐 다양한 장르와 각양각색의 예술적 개념이 혼재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를 산출하는 것, 현실을 재현·재생하는 것, 형식을 창조하는 것 등과 같은 나름대로의 정의가 그것이다. 작가 개개인의 정서가 중요시되어 한 가지 형식이나 사조가 주류를 이루던 과거와는 달리 전통회화와 사실주의, 추상주의와 팝아트, 설치와 퍼포먼스 등 형식 파괴에 가까운 다양성과 의미 부여가 용인되고 있다.

‘예술가는 있어도 장인은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국내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세계를 경주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다변적인 현대 미술계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정립해 가고 있는 염효란 작가가 그 주인공. 국내화단의 역량 있는 여류화가로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을 쏟으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는 염효란 작가가 자신만의 예술적 감수성이 담긴 예술세계를 꽃피우며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염효란 작가
염효란 작가

작가의 독창성이 없으면 외면받기 쉬울 수밖에 없는 현대 미술계에서 염 작가의 예술적 감성과 표현방법론상의 예리한 직관력은 다른 화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습관처럼 ‘그리기’에 몰두하는 염효란 작가에게 작업은 삶 일부가 아닌 버릇이자 일상이며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매개이자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영감이다. 머릿속에 담겨진 정신적, 감성적인 느낌을 여성적인 시각에서 그대로 표현해 내면서 예술을 향한 창작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염 작가는 “예술이란 작가의 내면적 경험과 각성을 포함한 내면의 심상을 보여주는 형식적 창조”라고 말한다.

FACE Mixed media  on canvas 2017

염효란 화가는 인간의 얼굴을 그린다. 그가 표현해내는 얼굴은 그동안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들로 점철돼 있다. 현대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외면과 내면의 양면성을 <FACE>시리즈로 전개하고 있는 그녀는 그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의 심리상태를 상징적인 ‘얼굴’을 통해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다수의 취향에 영합하거나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보편화하지 않으며 본인의 작품을 알리고자 대중취향적 표현방식으로 포장하지 않는 그녀의 작품은 미술계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FACE  digital printing

염 작가의 <FACE>는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내재적 감정 이미지를 상징한다. 화면 속 기괴한 형상들은 작가 자신의 얼굴이자 영혼의 그림자다. 속박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온을 꿈꾸지만,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현실과 이상, 좌절과 희망사이에서 갈등하는 작가의 자화상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사실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각종 표정은 상황, 기분, 장소 등 외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것이 본연의 모습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유동적인 환경 속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통해 보여 지는 각종 표정들은 ‘나’ 일수도 있고, 상대방의 심리가 투영된 모습일 수도 있다. 결국 표정이라는 것은 그 순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어느 순간 동안의 여러 감정 표현들이 뒤섞인 복합적 이미지라는 것. 마치 얇은 비닐 막에 싸여있는 듯한 여러 인간의 모습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환경에 따른 서사적 감정변화의 기록물이다. 결국 <FACE>는 여러 표정이 뒤섞이는 속에서 아직은 남아있는 인간미를 도출해 낸다.

FACE pencil on canvas

목탄, 아크릴, 혼합재료, 비닐을 이용한 자동기술법을 적용했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바탕으로 현상적인 전면화를 추구한다. 무채색을 통해 찍고 문지르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지거나 해소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작품을 보면 은은한 색감 속에서도 명암의 대비가 교묘히 교직되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감각적인 붓터치와 색의 조화가 적당히 병치를 이루어 질감과 입체적인 효과를 살리고 있으며 이러한 색채대비의 시각적 표현을 통해 염 작가는 자신만의 화도를 구축해 가고 있다.

본질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그 근원을 추구하는 일은 어쩌면 작가에게는 운명이다. 그동안 많은 화가들이 사물의 본질을 그리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다. 그 본질은 작가의 내면에 있기도 했으며 사물 그 자체에서 찾아볼 수도 있었다. 염효란 작가의 작품에는 우리 인간의 복합적인 감성이 배어 있으며 세계와 존재의 근원을 찾는 감정 이입의 대상으로서 존재의 본질 자체를 포용한 흔적과 사물에 대해 고찰한 그녀의 노력이 엿보인다.

염효란 작가는 “작가라면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아 사물을 새로이 해석하고 다양한 표현방법을 통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지향해야 한다.”며 “화가를 꿈꾸다 보면 이상과 다른 현실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정진과 도전으로 일구어내는 희열과 감동이야말로 화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자 기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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