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0 17:16 (목)
[정연철 박사 칼럼] 독도 이야기-4
상태바
[정연철 박사 칼럼] 독도 이야기-4
  • 정연철 전문의원
  • 승인 2018.04.11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화선 선언과 독도(1)
호담정책연구소 정연철박사
호담정책연구소 정연철박사

1952128, 당시로서는 6·25 전쟁이 진행중이던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의 선언을 공표하여 독도를 우리 수역에 포함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렇게 설정한 경계선이 한일간 평화 유지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기에, 그 취지에 따라 평화선으로 명명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은 물론 6·25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시기에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선언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1945년은 매우 의미있는 날이다. 비록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것은 아니지만 35년여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해방은 미국 주도로 결성된 연합군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관계로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을 비롯하여 전후 처리문제도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에 의해 다루어졌다.

특히 전후 영토처리를 위한 논의는 1945815일 이전에 연합국 수뇌부의 회동을 통해 대강의 원칙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연합국측의 논의 속에 독도가 최초로 대두된 것은 카이로 선언에서였다.

1943121일 발표된 카이로 선언의 내용 중에는 미국, 영국, 중국 등 3대국이 조선 민중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이 자유롭게 되고 독립하게 될 것을 결의한다고 하였다.

 

<카이로 선언>(1943. 12. 1)

THE CAIRO DECLARATION

Desember 1, 1943

(전략)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nd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free and independent.

(후략)

 

또한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탈취한 모든 다른 지역으로부터도 축출될 것이다. 위의 3대국은 조선 민중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이 자유롭게 되고 독립히게 될 것을 결의하였다.

 

 

카이로 선언 이후 194559일 독일이 항복에 조인한 지 2개월 만인 7월 미국의 루즈벨트, 소련의 스탈린, 그리고 영국에서는 처칠이 물러나고 애틀리 수상이 독일 포츠담에서 만나 포츠담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들은 이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本州, 北海島, 九州, 四國과 연합국측이 정하는 諸小島에 국한될 것이라고 하여 전후 일본의 영토 범위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포츠담 선언>(1945. 7. 26)

(전략)

The terms of the Cairo Decleration shall be carried out and Japanese sovereignty shall be limited to the Islands of Honsu, Hokkaido, Kyushu, Shikoku, and such minor islands as we determine.

(후략)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일본국의 주권은 本州, 北海島., 九州, 四國과 우리들이 결정하는 諸小島에 국한될 것이다.

 

 

포츠담 선언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8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고, 3일 후인 89일에는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날 소련이 2차대전에 참전하였고, 815일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항복 선언을 한 지 2주 정도가 지난 92일 조인된 일본의 항복 문서에는 전후 일본의 영토처리와 관련하여 위의 포츠담 선언의 조항들을 수락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항복문서>(1945. 9. 2)

 

We, hereby accept the provisions set of fourth in the decleration issued by the heads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China, and Great Britain on 26 July, 1945 at Potsdam, and Subsequently adhered by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We hereby undertake for the Emperor, the Japanese Government and their successors to carry out the provisions of the Potsdam Decleration in good faith.

 

우리(일본)1945726일 포츠담에서 미국, 중국, 영국의 정부 수뇌들에 의하여 발표되고, 그 후 소련에 의해 지지된 선언에서 제시한 조항들을 수락한다.

우리는 이후 일본 정부와 그 승계자가 포츠담 선언의 규정들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한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고 항복문서에 조인함으로써 일본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의 내용에 구속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상에서 연합국측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한다면 당연히 한국의 영토로 확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항복 이후 모든 사항을 결정해줄 강화조약의 체결이 지연되면서 독도를 포함한 영토문제의 해결의 단서는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결정에서 찾아야 한다.

연합국 최고사령부(SCAP :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 GHQ : General Headquarters)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1945102일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일인 1952428일까지 6년반 동안 일본 동경에 설치되어 있었던 기관이다.

바로 대일본 강화조약 발효일인 1952428일에 주목하면서 평화선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