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창호공방

 

전통 창호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가풍국 명장

 

문 만들기 50년 외길 인생을 살아온 소목장 가풍국 명장은 우리 나무의 아름다운 나이테를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고민하다 꿈속에서 얻은 영감으로 나무의 나이테를 상감 기법으로 박아 넣은 문을 만들게 되었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함께 갖춘 원목 나이테 상감문()’은 발명 특허를 취득하였고 이와 함께 문화재 기능인 작품 전시회 수상작품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나무들 100가지를 현재 한양공고, 성화대학, 인천어린이박품관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다. 가풍국 명장은 평생 나무를 깍아서 산 인생 나무에 대한 보답으로 나무를 알리고자 전국을 돌며 수집 후대에 알리는 작업 지속하고 있다.

 

현재 73살인 가풍국 명장이 처음으로 창호를 접하게 된 것은 19세가 되던 해였다. 당시 목공소 운영을 하던 형님에게서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평생의 직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군 제대 후에는 1972년 건설기능공훈련원에 들어가 건축목공 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본 오키나와 건설 현장에서 근무했는데, 서툰 일본어 때문에 차별이 심해지자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혔다. 비록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언어 소통이 자유로워졌고, 공사 현장의 반장까지 맡게 됐다. 일본 건설회사 소속으로 이라크 파견 근무를 거쳐 이란에서 팔레비 국왕의 별장을 짓는 일에 투입된 그는 그곳에서도 언어 문제로 차별을 받자 틈틈이 영어 공부에 매진했고, 결국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해 목공감독으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가족들과 떨어져 살던 가풍국 명장은 가족들 때문에 귀국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그는 나이 50에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고입검정고시와 대입검정고시에 최고령으로 합격했다. 검정고시며 기능자격시험,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느라 1년에 8번 시험을 치르기도 했고, 여러 번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는 가풍국 명장. 결국 그는 58세의 나이에 성화대학 건축과를 졸업했다.

가풍국 명장
가풍국 명장

 

 

가 명장은 쉰을 바라볼 무렵 전통 목재창호를 배우기 위해 전통 창호 무형문화재 김순기 선생(경기도무형문화재 제14)을 찾아갔다. 엄격하고 성격이 불같기로 소문난 김순기 선생의 밑에서 2년간 스승의 보이지 않는 시험을 묵묵히 통과하고서야 그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던 이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모든 노력이 하나로 모여 마침내 2004년 목재창호 부문 대한민국 명장에 가풍국이라는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그의 손을 거친 아름다운 창호들이 세상을 여는 문이 되기 시작했다.

 

스승과 함께 경회루, 광화문, 서울역사의 창호 문을 복원했고, 개인적으로는 경교장, 홍난파 가옥, 천년 고찰 안심사 등의 창호 문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지금도 1년에 반 이상은 문화재 복원 작업에 매달린다.중구 항동에 있는 인천우체국(현 인천중동우체국)200짝 되는 오르내리창도 그의 손에 의해 모두 복원됐다. 이런 목공 기술을 전수해야 하는데, 목공 일은 돈이 안 된다며 배우지 않으려는 요즘 세태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는 가풍국 명장은 지금도 끊임없는 연구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목공 입문 후 10년 정도 지나야 문짝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다행스럽게 그의 아들 가재현씨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공일을 하고 있다. 가재현씨는 얼마전 열렸던 2017년 인천지방기능경기대회 목공분야에서 금메달을 따낼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가풍국 명장은 지금까지 뚝심과 노력으로 전통을 오늘날까지 경쟁력있게 이어 왔고 아름다운 전통 창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겠다. 아울러 명장의 위치에 있지만 마지막 남은 소원은 우형문화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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