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기수 화백

올해는 정유년 닭의 해다. 닭 중에서도 ‘붉은 닭’의 해이다. 붉은 닭이라 함은 조선닭 수탉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벽을 알리는 앙칼진 수탉의 울음소리는 새벽을 가르고 새 아침을 펼치며 만물의 영혼을 깨우는 희망의 개벽을 의미한다.

수탉의 당당한기백과 찬란한 색채에 매료되어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자신의 작품 연구소에서 토종닭을 기르며 연구관찰, 작품으로 승화시킨 조선닭의 대가 김기수 화백의 지난 37년 외길인생과 독보적인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어 동아일보와 스포츠서울 등 국내10여개사의언론사에서 재조명되어 스포츠서울과 스포츠동아에서는 문화예술부문대상을 수상하며 기사가 보도되는 등 다시한번세간을 뒤흔들고 있다.

서양화가 김기수 화백 조각상

조선닭의 용맹성과 당당한 자태를 캔버스에 자신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인간세계의 희로애락을 닭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하며 작품으로 풍자하고 있는 김기수 화백은 “닭은 길조입니다.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동물이지요. 특히 우리의 조선닭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며 그 기개와 정신이 우리의 애민정신과 닮아 있습니다. 여기에 닭의 세계는 우리네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암탉은 어떤 동물이 나타나든 자기 몸을 날려 새끼들을 보호하는 희생정신이 투철한 모성애가 있고 수탉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다른 수탉이 나타나면 목숨을 걸고 혈투를 하며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지요. 혹자들은 닭은 머리가 나쁜 동물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냥 풀어놔도 저녁이면 여지없이 집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 바로 닭입니다. 우리생활 영험한 동물 12지간에도 들어 있는 슬기롭고 영민함을 지닌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선닭_평화

1953년 충북 보은속리산근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김기수 화백은 1980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986년에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인준되었다. 홍익대 미술교육원에서 서양화 유화를 전공 수료하고 한국화단에서 조선닭 화가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김기수 화백그림의 예술성은 이미 미술전문가들에게도 정평이 나 있는 국내 최고의 반열에 오른 대가이다. 이미 25년 전에 프랑스, 이태리, 영국, 네델란드 등 유럽미술계를 기행하고 파리세느강의스케치여행은 물론 뉴욕초대전을 비롯하여 단체전, 그룹전 등 300여회가 넘는 미술전에 참여하면서 일본, 중국, 베트남 등 많은 나라를 왕래하며 국제전에 참여하였고 한국미술의위대성을 세계화단에 알렸으며 한국미술계의발전에 크게 기여한 세계적인화가이다.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 받는 그의 작품 중에서 33년 전에 그린 쌀가마 그림은 사실주의 작품의 극치를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구상미술의 진수를 여지없이 보여 준다. 아울러 닭들이 돈을 물고 가는 작품, 닭들이 카페에 모여 앉아 술을 먹고 안주로 오징어 발을 물고 있고, 닭들이 담배를 피우는 작품들은 초현실 작품의 극치를 그대로 표현한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김기수 화백은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자유자제로 넘나드는 역량 있는 대가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김기수 화백은. "조선닭은 새벽을 가르며 어둠에서 활동하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빛을 불러오는 당당한 기백이 있다. 또한 조선닭의 색채는 환상적이며 찬란하다”고 말했다.

쌀가마

김기수 화백의 작품들은 단순한 닭 그림이 아니다. 눈으로 보면 닭 그림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인간세계의 생활을 닭으로 대변하는 인간세계의 메시지인 것이다. 예술가는 제2의 창조주라 했다. 수많은 닭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대평원에서 서로 으르며 물고 뜯고 싸우며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해 있는 이시대의 자화상인것이다.김기수의작품에서가아니면볼수없는그림일것이다.그래서그를 "메시지 있는 조선닭 그림의 창시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조선닭_이 시대의 자화상

자연을 사랑하는 김화백은 조용한 환경에서 작업하기 위하여 복잡한 서울 도심을 떠나 화성군 양감면 시골마을로 작업실을 옮겨 전원생활과 함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99년 화성군에 거주하는 각 분야 미술인들이 김기수작품연구소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업실에서 여러 차례 회의 끝에 2000년 화성시 승격과 함께 화성미술협회를 창립한 장본인이기도하다.

김기수 화백은 뛰어난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83년 동경아세아미술대전 은상수상, 국회예술인상(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 일본문화진흥회 한·일 문화공로상(일본천황 원황족 후시미 히로아끼상) 등 굴직한 상을 20여회 이상 수상경력이 있으며 제23대 한국미술협회 중앙본부 상임위원회 홍보 부 본부장을 역임하였으며 맡은바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여 한국미협(이사장 조강훈 )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제45회 경기도전 심사위원, 제33회 대한민국미술대전(가을국전)서양화부문심사위원 및 전국미술공모전심사위원장및 심사위원을 총 17회 역임하였고 현재는 한국미협회원, 용산미술협회 자문위원,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 현대사생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화백은 언론사 불교문화예술신문 미술심의위원장, 문화스포츠신문사 고문을 역임하면서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이태길, 전호, 조규석, 노광, 김충식 화백은 물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노재순, 조강훈 등 관록있는 대가들의 작품을 예리한 감정으로 평론하여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하여 수준 높은 미술평론을 하는 글 잘 쓰는 화가로도 유명하다. 김기수 화백은 끊임없이 고뇌하며 연구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다.

김기수 화백은 “화가는 목적지를 향하여 혼자 뛰는 마라톤 선수처럼 외롭고 고독하며 끝이 닳아버린 수백 개의 붓을 버려봐야 자기 작품을 창출 할 수 있다 고 말한다. 또 지금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분야는 정체기에 도달해 있다. 국가는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들수록 문화 예술 분야의 지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자기예술분야에 전념 할 수 있고 그로인해 현실에 지친국민들은 문화적 정서를 힐링하고 국가적으로는 선진국대열에 동참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부담당 관료라는 사람들이 예술분야에 대한 인식과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붓을 꺽거나 직업을 바꾸기도 하고 탈진해서 쓰러져가는 예술인들이 여기저기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정부의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지원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 땅의 예술인의 애환을 자신의 고통으로 염려하는 김화백은 지금은 유명화가이자 지도자급 작가로서 돈에 대한 어려움은 벗어났지만 지난 37년간 오로지 그림만 그리며 살아오면서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영양결핍으로 쓰러지기도 했고 많이 좌절했지만 인내하며 잠 안자고 노력해서 딸 셋을 모두명문대학을 졸업시키고 화단에서 활동하며 사람의 도리를 하면서 질경이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작가들의 애환과 고뇌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는 명작을 창조하기위하여 연구와 고민을 하고 있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에도 그의 작업실에는 불이 훤하게 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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