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장마 비가 거침없이 퍼부었다. 비와 눈물은 비슷한 것인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도 몇 년을 울면서 다니셨다. 너무 슬프게 우시는 바람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어머니와는 평소에도 사소한 말다툼이 잦았으므로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새로 친구 분이 생겨 외로움은 조금 덜었으나 아버지는 지금도 한번 씩 어머니가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금방 붉히곤 하셨다. 친구 분은 아버지가 우실 때면 옆에서 같이 우셨다. 그 분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되어 평생을 살아오신 분으로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버지를 만나기 직전 남동생을 이제 막 딴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아버지처럼 눈물로 나날을 견디던 차에 마침 우연히 서로 사정을 듣게 되면서 가까워지셨다. 거의 매일을 울다시피 실성한 사람처럼 지내시던 아버지가 그나마 말동무가 생기고 맘 한편에 위안 삼을 일이 생긴 것 같아 나는 천만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두 분이 좋은 친구로 오래 지내시기를 바랐다. 친구 분은 수시로 아버지가 드실 것과 입으실 것을 챙겨 오시는가 하면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며 우울하게 앉아있던 아버지를 잠시나마 웃으시게 해 드리셨다. 사람이 우울하면 말하기도 귀찮고 바깥나들이도 성가신 법인데 다행히 처지가 비슷한 분끼리 만나 말도 금시 통하고 서로 장난도 치시는 것을 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나도 큰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이 일은 이모들을 비롯한 며느리들의 마음에 적지 않은 서운한 일이 되어 은근히 아버지를 멀리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말들을 쏟아내었고 그러한 비판의 화살은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모처럼 외국에서 돌아온 형님네 식구들은 손녀들까지 합세하여 새로 나타난 아버지 친구 분을 못마땅해 하였다. 이모들은 더욱 심해서 아버지와 연락도 끊고 남 아닌 남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나도 처음엔 섣불리 나서서 무어라 말은 못하고 뚱하고 있었지만 한결같은 아버지 친구 분의 인품에 차츰 마음이 열려 지금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같은 부모님처럼 존중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 처지가 불쌍하여 이 모든 일들을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판단인 즉,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 친구 분과 다니시는 것은 경솔한 처신이라는 것인데 나는 그러한 판단이 정말로 아버지를 위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해를 넘기기까지 날이면 날마다 실성한 사람처럼 울며 지내시던 일을 떠올리면 이런저런 현명한 충고들을 차치하고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생각되는 것이다. 더욱이 잘 알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오래 전 일들을 들먹이며 그 당시 자신들의 서운한 입장까지 덤터기를 씌우면 어떤 사람도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아버지를 몰아세우는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지나친 오해와 억측으로 인한 것들이다. 설령 그게 아니라 해도 뒤를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 한 두 가지 없는 자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나도 어렸을 때 존경하던 사람들이 서로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사람도 있겠지만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지 흠 없는 삶만을 부러워 할 일도 아니다. 인생은 단맛 쓴맛이 함께 있는 자체로 훌륭하고 충분한 것이다. 지나친 역설 같지만 좋은 집안에 태어나 단맛만 보고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기다가 늙어버린 인생은 기실 흉측한 것이다. 후회도 있고 풍랑과 질곡으로 인한 굴절도 있고 굵은 상처와 흉터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주린 배를 움켜쥐어 본 삶이 사랑스럽다. 억울한 일도 당하고 슬픈 일 속에서 몸부림을 칠지라도 그러한 인생 속에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면 행복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후회와 비밀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사람이 판단할 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옳다 그르다 시비를 가린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남의 일을 가타부타 말하기 전에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당사자 없이 뒤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돌을 던질 자격이 없으면 아예 말을 삼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자신들의 판단으로 오갈 데 없어진 사람에게 비난을 쏟아내면 공자나 석가처럼 살지 못한 사람은 마을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작 마을을 떠난 자들은 그들이다. 마을은 별 수 없는 비슷한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한 우물을 마시고 살아가는 곳이다. 잘났어도 그리 부러워할 게 못되며 못났어도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그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다. 서로 다르면서도 결국은 서로 닮은 사람들이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비에 모든 앙금들이 씻겨 떠내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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