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됨과 같다는 말이 있다. 글씨체를 보면, 외모로 알 수 없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말, 글, 글씨 모두 뇌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이나 글로 인격을 꾸며낼 수 있지만, 글씨에는 속마음의 사람됨이 부지불식간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동굴 벽에 상형문자를 쓸 때부터 글씨는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글쓰기는 ‘치는’ 행위가 돼버렸다. 컴퓨터 화면이 종이를 대신하고 키보드가 연필을 대신하고 있으며 수많은 스마트폰이 개발되면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손으로 업무를 처리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악필로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일충 송병주 선생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글씨연마를 지속하며, 2014년 (사)대한민국 명인회로부터 대한민국 대한명인 제415호로 선정된 전국 유일의 세필분야 대한명인 일충 송병주 선생이 악필교정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송 선생은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학 등에서 세필지도 및 악필교정 전문가로 활동하는 한편, 네이버에 ‘악필교정 출장지도’ 홈페이지를 열고 출장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악필 사례를 분석하고 교정률을 높여주는 예문으로 단계에 걸쳐 글씨 교정이 이뤄지도록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집필법, 자세, 악력의 세기, 마음가짐 등을 상세하게 지도하면서 수강생들이 올바른 글씨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교정해 주고 있다. 송병주 선생은 “펜을 잡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일상인 현대인들에게 인성교육이나 아날로그 감성이 영향을 주면서 강의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송 선생이 세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청년 시절인 지난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 다른 필체를 자랑하던 송 선생은 군(軍) 입대를 앞두고 육군본부에서 시행하는 차트(chart)행정병을 자원하게 된다. 당시 차트병은 전국의 글쟁이를 대상으로 시험을 본 뒤 극히 일부만 선출했다. 인쇄 기술이 지금보다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정확하고 수려한 글씨체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차트병으로 복무한 군 시절은 송 선생을 세필의 길로 인도하게 됐다. 군 복무와 동시에 본격적으로 글씨를 공부한 송 선생은 차트 1·2급(1986), 펜글씨 1·2급(1986), 세필 1·2급(1989) 등 대한글씨검정교육회에서 발행하는 모든 자격증을 취득했다.

군 복무를 매개로 세필과 인연을 맺은 송 선생은 지난 1990년 국토교통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세필로 특채돼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재능기부로 눈을 돌려 국토관리청 퇴근 후 대전광역시 배달강좌 악필교정 강사, 대전시민대학 악필교정 교수 등으로 활약하며 보다 나은 필체를 전수해주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보다 나은 필체를 향한 송 선생의 노력은 그를 국내 최고의 반열에 올렸다. 한국 매죽헌서화협회 초대작가,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충남), 한국서도협회 초대작가(대전,충남) 등의 이력을 쌓으며 세필 분야 최고로 이름을 각인시킨 것. 특히 두 차례의 도전 끝에 거머쥔 대한명인은 그의 세필 인생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아울러 세필은 송 선생에게 안전행정부 재능기부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겼음은 물론, 국토부장관 표창, 세계명인회 감사장, 2015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2016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도 선사했다.

글씨는 내 인생의 전부라며 악필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예쁜글씨를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는 일충 송병주 선생. 그의 아름다운 글씨체가 머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사회 전역에 퍼져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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