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카니스탄 탈출 사태를 보며

며칠 전 살아가는 일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바로 아프칸 탈출과 관련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뉴스를 보는 도중 지인이 말을 던진다. “아프칸 사람들은 가족이 없는가. 하나같이 성인 남자들만 비행기로 몰려가고 있네요”

자세히 보니 사실이었다. 카불을 탈출해 살겠다고 나온 공항의 사람들은 모두 성인 남자들 뿐이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부인이나 어린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프칸 사태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발생했던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국방부 청사 등에 대한 테러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 무장 테러단체인 알카에다 대원이 납치한 여객기 4대를 이용하여 저지른 것으로 3천 여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테러였다. 그리고 테러단체인 알카에다 지도부를 숨겨주고 있다는 이유로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탈레반 정부와 전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금년까지 20년을 끌었고, 뚜렷한 결과도 만들지 못한 채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및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맸었다. 그리고 뒤이은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 4월 14일 “올해 9월 11일까지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미군이 철수를 본격화한 이후 공세를 강화한 탈레반은 8월 6일을 전후해 주요 거점 도시들을 장악한지 10일 만에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아프카니스탄 정권을 장악하자 카불 공항은 필사의 탈출을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칸의 탈출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사태가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까.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에 시달려왔던 우리의 전쟁사를 통해 위급한 사태에 어떻게 대처했었는지 살펴보았다.

삼국시대에는 북쪽에 자리하고 있던 고구려의 강인함으로 한반도로 침입하는 외세는 없었다. 그러다 고려시대를 맞이하면서 외세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먼저 거란과의 전쟁이 있었다. 고려 성종 12년(993년)부터 현종 10년(1019년)까지 26년 동안 3차례의 침략이 있었다. 거란이 처음으로 공격을 시작한 993년부터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전쟁이 끝나는 1019년까지 고위 관료와 온 백성들이 힘을 합쳐 거란을 물리친 전쟁이었다. 다만, 거란의 2차 침입 시에 고려 현종은 수도인 개경을 버리고 전라도 전주, 광주, 나주 등지로 몽진을 하였고, 이 사이 거란군은 개경을 함락하고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였다. 이때 역대 고려 왕조의 행적을 기록한 실록이 소실되기도 했다. 후에 7대 실록으로 복구되었다.

다음은 몽고와의 전쟁이다.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후 고려 고종 19년(1231년)부터 고종 46년(1259년)까지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몽골제국의 9차례에 걸친 침략으로 전 국토는 잔혹하게 짓밟혔다. 고려는 최(崔)씨 무신정권 시기로 전쟁이 발발하자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하여 시간만 끌었다. 백성들은 자신의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몽골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1259년 고려 원종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천도하면서 고려는 몽골에 복종하게 되었다. 원종 이후 고려의 왕 이름도 ‘충’자를 붙여 부르게 되었는데, 제25대 충렬왕부터 제30대 충정왕까지 6대에 걸친 왕이 그들이다.

이어서 조선시대의 전쟁이다.

먼저 임진왜란이다. 이 전쟁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부터 선조 31년(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인 1592년에 일어났기에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2차 침입이 정유년인 1597년에 발생하였기에 ‘정유재란’이라고 칭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관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임금인 선조는 의주로 몽진을 하였다.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이었지만, 가족과 자기 고향을 지키려는 의병들이 일어나면서 전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의병들은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이 다양했고, 왜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물론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의 활약으로 전쟁은 끝이 났지만 내 가족과 고향을 지키려고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은 빛나는 전공이었다.

다음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있다.

정묘호란은 인조 5년(1627년) 1월 중순부터 3월까지 약 2개월간 후금(後金)의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인조가 광해군 때의 대외정책을 부정하고 후금과의 관계를 끊으면서 명나라를 지원하는 친명배금 정책이 원인이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을 했고, 평산까지 진출했던 후금군은 계속 남하하는데 따른 후방 위협의 부담을 고려하여 곧 철병하였다.

이때에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후금군의 배후를 공격하거나 군량을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정묘호란으로 화의를 맺었지만, 후금이 요구하는 막대한 세폐(歲幣)와 수시로 강요하는 물자의 조달에 대한 반발로 금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이 강화되자 인조 14년(1636년) 청나라로 국호를 바꾼 후금이 2차로 침입을 하였다. 병자년인 1636년 12월 8일 발생하여 ‘병자호란’이라 부르는 이 전쟁은 불과 50여일 만에 끝이 났지만, 인조 임금의 삼전도 굴욕으로 회자되는 전쟁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금은 살기 위해 몽진을 하였지만, 선량한 백성들은 자신의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적들과 맞서 싸웠다. 한반도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도망을 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가족과 고향을 지키고자 스스로 전쟁터로 나갔다.

가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 혼자 살겠다고 공항으로 다려나가는 아프칸에서의 탈출 사태를 보면서 내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현재 코로나로 인하여 전세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바로 가족을 위해 땀흘리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프카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미 공군 공군기로 몰려드는 아프칸 사람들
아프카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미 공군 공군기로 몰려드는 아프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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