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와 보사제(報祀祭)

입추(立秋)를 맞아 올 농사의 풍년을 빌어본다
입추(立秋)를 맞아 올 농사의 풍년을 빌어본다

올 여름 짧은 장마에 이은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겨운 여름나기를 했다. 더구나 델타 바이러스로 인하여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 상황 속에서 2021년 여름은 잔혹했다고 하겠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8월 7일은 절기로 입추였다.

입추는 24절기 중 13번째로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다. 입추라는 말 그대로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면 입추 이후 말복(末伏)이 이어지고 있기에 입추 시기는 대서와 더불어 여름 더위가 최고 절정을 이루는 시점이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가을 날씨에 접어드는 시점은 입추가 아닌 처서 절기의 시점이다.

올해의 경우 짧은 장마로 인하여 비오는 날이 많지 않았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보면 장마가 길어져서 입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입추를 지나서도 비가 계속되면 날이 개기를 기원하며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삼국시대부터 전해지고 있다. 농업이 주요한 산업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왕조마다 수차례의 기청제를 올리며 날이 개기를 간절히 빌었다. 농사가 중요했기에 모내기철에는 가뭄으로 인해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며 비를 바랐건만, 입추 무렵에 내리는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청제를 올려야 했던 현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기우제나 기청제를 올렸을 때 뜻하는 대로 비가 오거나 비가 그치게 되면 그 효험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가 보사제(報祀祭)다. 보사제를 지낸 기록은 조선 태종 때로부터 고종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하여졌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보사제는 대부분 입추 절기가 지난 후에 행하여진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태종 16년(1416년) 음력 7월 3일, 18년(1418년) 음력 8월 1일, 세종 8년(1426년) 음력 7월 17일, 20년(1438년) 음력 8월 25일, 효종 3년(1652년) 음력 9월 13일, 영조 45년(1769년) 음력 7월 17일, 정조 1년(1777년) 음력 7월 8일, 7년(1783년) 음역 7월 27일, 고종 22년(1885년) 음력 7월 20일 등의 보사제는 모두 입추 절기 이후에 행해졌다.

보사제를 입추 절기 이후에 지내도록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시기로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야 한다. 이날 날씨를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豐凶)을 점친다. 입추 날에 하늘이 청명하면 모든 곡식이 풍년이라 여기고, 비가 조금 내리면 길(吉)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보았다.

보사제는 일종의 기청제로 입추 후 비가 계속되면 농작물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제사 자체를 입추 이후에 지내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 속에는 입추 이후 비가 멈추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정성이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보사제는 비와 관련하여 지낸 것이 대부분이지만 세종대왕의 경우에는 지병을 치료하여 효험을 보았을 때에도 보사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31년(1449년) 12월 3일 세자의 쾌차로 종묘와 사직에 보사제를 행하였고, 세종 32년(1450년) 2월 9일에는 임금의 병환이 나았으므로 신사(神祠)와 불우(佛宇)에 은혜를 갚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폭염까지 겹치며 힘겹게 보내고 있는 2021년 여름.

입추를 지나 가을을 맞으면서 코로나19를 떨쳐내고, 풍년 농사 노래를 흥겹게 부르며 대한민국의 상승을 기원하는 현대판 ‘보사제’를 온 국민이 함께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