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교인스타그램 : instagram.com/writer_yun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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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했다'라는 말이 어때 보이십니까.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거나 책임감이 없어 보이거나 자신을 아끼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회피하거나 얼렁뚱땅 넘어가자는 태도나 말은 좋지 못한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인정하고 진정으로 놓아버리는 고도의 기술은 자신을 괴롭히는 크고 작은 문제를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기술임이 분명합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어떤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작고 사소한 일에만 인정하고 놓아버리는 기술을 쓸 수 있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고 사소한 일에서 놓아버리는 기술을 적용해 본다면 놀랄 만큼 삶이 편안해질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이 자신의 논리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큰일이 생기면 그 무게감에 짓눌리며 곧 감정에 지배당하고 휘청거리기도 합니다.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잘못 동화되는 경우 평소에 보지 못했던 자신을 만나게 되는 일이 나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깊은 우울감이 몰려와도 잔잔한 파도처럼 고운 선을 지킬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사실 즐겁고 기쁜 일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쁜 일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만끽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너무 취해도 좋지 못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기쁨이나 즐거움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매우 위험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기쁨이나 즐거움이 꼭 행복을 이루는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뒷면엔 반드시 슬픔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이원성이라는 말로 설명됩니다. 이원성이란 빛과 어둠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빛이란 존재는 어둠이 존재함으로 그 존재가 완성될 뿐입니다. 기쁨이 있다면 반드시 슬픔이 따르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하지 않는 규칙입니다.

보통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당시의 사건과 감정을 나란히 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우도 분명 있을 테니 말입니다. 더욱더 훌륭한 것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과거라는 의식 안에서 단단해지기 이전에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자유롭게 놓아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내가 잘못했다'라는 말과 의식을 매우 긍정적인 밭에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까요.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대처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억울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바로잡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억울한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잘못했다'는 말엔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사실은 내가 잘못했다라고 의식하는 동시에 어떠한 사건에서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제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억울한 일이라고 여겨질 땐 항상 점검이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억울한 것인지 사실은 그것이 아닌지 스스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욱 중요한 것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이 불행으로 연결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빠르게 그것에서 빠져나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물론 이것을 자포자기하자는 뜻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상호작용이 존재합니다. 상호작용이 없다면 결과 라는 것 역시 의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박수 소리는 손바닥 두 개가 만나야만 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억울한 감정에 잠식되지 않으며 조금 더 자세하고 깊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작용'에 대한 통찰과 깊은 생각이 필요할 것입니다.

앞에서 이원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앞면과 뒷면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뒷면에 대한 통찰이 우리의 삶을 더욱 깊은 평화로 안내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진정으로 인정하고 진정으로 놓아버리는 이 기술의 핵심은 결국 이원의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에 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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