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인가

영국의 저명한 시인 겸 평론가이자 극작가인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년∼1965년)는 그의 장편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라는 작품의 첫소절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라고 읊었다.

엘리어트의 이 표현으로 인하여 4월이 되면 사람들은 익숙한 듯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되뇌이곤 한다.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인가.

엘리어트는 이어진 시구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읊어주고 있다. 4월이 되면 겨울내 얼어있던 대지의 숨결이 살아나고 봄비가 내리면서 만물이 소생한다고 하면서 엘리어트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엘리어트는 무엇 때문에 4월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장편시 ‘황무지’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한번은 쿠마에의 무녀가 호리병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여기서 쿠마에의 무녀(Cumaean Sibyl)가 “죽고 싶어”라고 대답한 말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무녀(Sibyl 또는 Sibylla)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예언자를 뜻하며, 지역마다 여러 무녀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무녀가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 ‘쿠마에’의 무녀였다.

고대 로마의 시인인 오비디우스(BC 43년∼AD 18년)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 아폴론 신은 아름다운 쿠마에의 무녀에게 반해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한 줌의 모래를 쥐어들고, 이 모래의 숫자만큼 오래 살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아폴론 신에게서 천년의 삶을 받았지만 영원한 젊음은 받지 못했다. 그녀가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에 아폴론은 그녀에게 영원한 젊음은 주지 않았다.

그 후 쿠마에의 무녀는 천 년이란 세월 동안 점차 늙고 왜소해졌고, 나중에는 몸이 호리병 속에 들어갈 만큼 작아지다가 결국은 사라졌고, 목소리만 남았다고 한다. 영원한 삶의 축복이 쿠마에의 무녀에게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가장 가혹한 저주가 되었다.

엘리어트는 호리병 속에서 죽지 못하고 있는 쿠마에의 무녀를 떠올리며 4월이 되어 다시금 살아나야 하는 그녀의 상황을 ‘잔인’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4월은 어떠한가.

지난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발생했던 4·3 사건을 비롯하여 1960년 4월 19일에 있었던 4·19 혁명 등 커다란 사건사고가 있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로 인한 참사 사고가 있었는가 하면 2014년 4월 16일엔 세월호 침몰 사고도 있었다.

이들 사건사고로 보면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라 하겠다.

그러나 4월엔 식목일을 비롯하여 장애인의 날, 과학의 날, 법의 날, 저작권의 날 등 많은 기념일이 함께 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4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일이 국회의원 임기 만료일인 5월 29일의 50일 전인 4월 9일 이후의 첫 번째 수요일에 치르도록 되어 있는데, 이날은 4월의 유일한 공휴일이 된다.

2021년 4월!

4월은 봄이라는 계절과 더불어 논과 밭에 씨를 뿌리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이다.

비록 작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지만, 하루빨리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여 우리 모두가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한 해의 시작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한 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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