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문인화는 ‘문인’이라는 시대의 엘리트가 당대의 덕목과 자신의 사상을 회화 형태로 표출한 독특한 양식으로 오랫동안 동양회화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해 왔다. 고대 중국에서 삼절(시, 서, 화)을 근간으로 전개돼 온 문인화는 문인지화, 즉 문인이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로 역사 속에서 이들 문인이 지녔던 인문주의 발현의 한 산물로서 이루어졌고 지금까지 전래되어 왔다. 작가의 높은 인격과 사상으로 시적인 분위기 속에 흥취된 상태에서 어떤 화풍이나 기교에 구애됨이 없이 맑은 정신 상태에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한 문인화는 작가의 수양된 인품이 나타나며 감상하는 사람에게는 그윽하고 청아한 감정이 일어나도록 한다. 형식적으로는 지필묵을 중심으로 한 고유한 조형체계와 내용으로는 독화라는 독특한 감상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조형과 감상체계는 독자적인 안전성을 지니는 것으로, 여타 회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박등용 화백
박등용 화백

전북 임실 태생의 박등용 화백이 문인화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을 쏟으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다. 금파 고병덕 선생으로부터 시서화의 기본기를 사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도안사로서 활동하던 중 18년 전 본격적으로 문인화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정통서예와 문인화를 바탕으로 현대문인화를 개척하고 있는 국내화단의 역량 있는 문인화가로 전통의 방식을 중시하면서도 자신의 주관적인 통찰을 통해 전통회화의 기법을 더욱더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즉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대적인 미적 감수성에 부응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내려고 절치부심 노력하고 있다.

박등용 화백은 문인화에 사용하는 전통재료를 넘어 서양재료를 배합하기도 하고, 사물의 극단적인 단순화 및 색채 대비 등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는 전통적인 틀과 내용을 원칙적으로는 수용하지만, 개별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보다 차별화되고 현대적인 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로 온고지신의 자세와 부합된다. 박 화백은 “‘온고지신’을 바탕으로 전통의 방식을 중시하면서도 나만의 주관적인 통찰을 통해 전통회화의 기법을 더욱더 넓히고자 한다.”며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문인화의 새로운 가치와 현대미술로서의 생존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선비정신과 전통 문인화의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창작정신을 추구하여 현대인의 시각으로 시대정신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서체 연구개발에도 열의를 쏟은 선생은 캘리그라피 ‘운정체’를 개발해 작품의 개성을 한층 배가시키고 있다. 맑고 곧은 서체는 물론 절도 있는 색채와 소묘가 형태적인 리듬을 타고 하나의 조형적 운율을 형성해 내고 있다.

글과 그림의 조화뿐 아니라 농묵·중묵·담묵 등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생동감 있는 선과 색, 구상, 여백 등의 자연스러움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박 화백은 글을 그림같이, 그림을 글씨같이 하여 글속에는 화풍이 그림 속에는 생명력 있는 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화, 서예, 문인화를 골고루 섭렵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문인화에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동양미술에는 은유적이고 상념적이며 정적인 요소가 잘 표현돼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으로 화가의 감성과 내면세계를 담아낸 작품이 유통과정을 겪으면서 시장성이라는 결과만이 중시돼 최근 미술계에서는 전통미술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대학에서조차 동양화과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로 우리의 정서가 깊게 배인 학문의 입지가 좁아지고 우리의 것에 대한 가치도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그 뒤를 이어 한국미술을 지키고 이끌었던 화가들은 미술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잘 알지 못한다. “미술의 기본은 그 민족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는 박등용 화백은 “우리 미술이 현실생활에 기반을 둔 역사, 전통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국민의식을 가꾸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창작의 주체자들 또한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매진해야 함은 당연하다.”고 역설했다.

문인화를 그릴수록 문인화가 가지는 여백과 선, 오묘한 필묵의 조화에 심취한다는 박 화백은 “하얀 화선지를 펴 놓고 먹을 갈 때 느끼는 그 희열과 빈 화선지 위에 고운 선을 수놓는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문인화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화선지 위에 먹선 하나로 마음을 전달하고자 선을 긋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깨달음을 주고 얻기도 하는 문인화는 마음을 치유하는 미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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