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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독도박사 정연철 칼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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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독도박사 정연철 칼럼-9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21.03.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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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독도를 ‘고유영토’라 주장하는가

지난 22일 오후 일본 시마네(島根)현 마쓰에(宋江)시에 소재한 시마네 현민회관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정권 출범 후 처음 열린 지자체 행사였는데, 아베 정부 시절처럼 일본 정부는 와다 요시아키(和田義明) 내각부 정무관(차관급)을 파견하였다. 이는 아베 정부로부터 9번째 연속으로 참석한 것이다.

특히 이날 오전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정레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竹島, 우리의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다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일본국의 일관된 입장으로 ‘다케시마는 일본국 고유의 영토’라고 명기하고 있다. 그리고 23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사설을 통해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하면서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독도에 대하여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

과연 고유영토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나 주장하는지 분노를 넘어 딱하고 기막혀서 할 말을 잃게 한다.

고유영토는 사전적 개념으로 보자면 역사상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는 자국의 영토를 말한다. 이런 의미로 일본에게 묻는다. 지난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식민통치 시기를 제외하고 독도가 한 번 이라도 일본의 영토였던 적이 있었는가.

일반적으로 영토의 취득은 자연작용과 선점에 의한 시원적(始原的) 취득과 시효(時效), 할양(割讓), 그리고 정복(征服) 등으로 타국의 영토를 취득하는 파생적(派生的) 취득이 있다.

독도는 우리나라가 자연적으로 선점하여 영유하고 있는 시원적 취득에 의한 고유영토이다. 이런 독도를 일본이 자신들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다니.

그동안 일본이 독도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보여왔는지 살펴보자.

이미 검증이 완벽하게 끝났지만 독도는 울릉도에서 날씨 맑은 날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섬이다. 우리 역사에서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우산국(울릉도 옛 명칭)을 병합하여 우리의 영토가 되었다. 다만, 고려말 시기부터 해안가나 섬에 출몰하여 노략질을 하는 왜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1417년) 육지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진 섬들을 아예 비워버리는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실시하였을 때, 17세기 즈음에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불법적인 벌채와 어로행위를 하였었다.

이때 동래어민 안용복이 1693년과 1696년 2차례에 걸쳐 일본에 들어가 당시 에도(江戶)막부에게서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약받았다. 안용복의 도일 활동으로 당시 조선 정부와 일본 사이에 독도를 둘러싼 외교 논쟁을 벌였다. 7년간의 논쟁 끝에 1696년 1월 28일 일본 에도막부는 독도가 조선 땅이며, 일본인들의 독도로의 항해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때 에도막부는 “(울릉도를 포함한 독도는)지리상으로 조선과는 40리 정도이고, 이바나(因伯)에서 160리 정도로 일찍부터 그 섬이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다만 쓸모없는 작은 섬을 무력으로 얻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이후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에 외무성 관원을 파견하여 “竹島(당시는 울릉도) 松島(독도)가 조선 부속이 된 경위”를 조사시켰는데, 이들은 1870년 4월 「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보고서를 통해 죽도와 송도가 모두 조선령(朝鮮領)임을 보고하고 있다.

2월 22일 일본 시마네 현민회관에서 열린 다케시마(독도)의 날 행사 장면
2월 22일 일본 시마네 현민회관에서 열린 다케시마(독도)의 날 행사 장면

 

또한 1877년 3월 일본 내무성에서 독자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竹島 外 1島(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당시 최고 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太政官)에서 “竹島 外 一島(울릉도와 독도)는 본방(本邦, 곧 일본)과 관계 없음”이라고 승인한다. 그리고 이렇게 승인한 것을 시마네현에는 4월 9일 “일본해 중 竹島 외 一島 소속에 관한 것 本邦(일본)은 관계 없다는 뜻”을 지령하였다.

그리고 1881년 8월 발행된 기타자와 세이세이(北澤正誠)의 『竹島考證』은 6세기부터 19세기 후반(1881년)까지의 울릉도(당시 일본명 竹島)와 독도(당시 일본명 松島)에 관한 기록을 채집하여 분석하면서 “松島는 한국의 울릉도이고, 竹島는 즉 松島에 붙어 있는 작은 암석”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렇듯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시종일관 인정한 일본이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독도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후 태도를 바꾸고 있다. 그 첫 번째 조치가 시마네현 고시를 통한 불법적인 영토편입이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는 조약 초안에 독도를 한국으로 돌려주려는 내용을 삭제하려 하였다. 그같은 일본측의 시도로 제1차에서 제5차 초안까지 독도가 한국에 돌려주어야 할 섬으로 명기되었던 것이 결국은 독도 관련 내용이 삭제된 채로 1951년 9월 8일 체결되었다.

6·25 한국전쟁 이후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외교교섭이 진행되면서 양국 정부는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외교문서를 통해 각각 4차례에 걸친 정부 입장을 밝혔다. 이는 1952년 1월 18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일명 평화선 선언)’이 계기가 되었다. 평화선 선언 이후 일본은 1953년 7월 13일 ‘다케시마에 관한 일본 정부의 견해’를 시작으로 1954년 2월 10일 2차 견해, 1954년 9월 25일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제의에 이어 1956년 9월 20일 제3차 견해, 그리고 1962년 7월 13일 제4차 견해를 밝혔다.

독도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제1차부터 제3차 문서에 이르기까지 “죽도(독도)는 역사성과 국제법에 기초한 사실에서 논쟁의 여지없이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였으며, ‘고유영토’라는 표현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4차 견해를 밝힌 1962년 7월 13일에 와서야 일본 정부는 “죽도(독도)가 예로부터 일본 고유의 영토였다고 종래부터 명백히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은 결단코 독도에 대하여 어떠한 영유도 주장할 수 없다. 고유영토이든 국제법에 의한 취득이든 독도는 일본 영토의 일부가 될 수 없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이후 1,5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한민국 역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소중한 섬, 독도는 어느 누구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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