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독도박사 정연철 칼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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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독도박사 정연철 칼럼-2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21.01.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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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회 전국동계체전 취소
1956년 이촌동과 노량진 근처에서 열렸던 빙상경기 모습
1956년 이촌동과 노량진 근처에서 열렸던 빙상경기 모습

 

문화체육관광부는 1월 8일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2월 5일부터 8일까지 서울과 강원, 그리고 경북에서 분산개최 예정이던 제102회 전국동계체육대회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교육부, 시·도 체육회, 동계종목 체육단체 등 관계기관들과의 협의 결과, 동계체전 개최시 합숙, 단체훈련 등으로 인한 선수들의 감염 확산 우려, 동계종목 특성상 설질(雪質) 저하 등으로 연기가 어려운 점, 그리고 수도권과 일부 시·도 경기장 시설 이용이 어려워 선수들의 훈련 부족으로 인한 부상 위험이 큰 점 등으로 취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전국 규모의 대회인 만큼 선수들의 안전이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점과 참가 대상 중 학생선수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정상적인 대회 개최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20년 한강에서 전조선빙상경기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동계체전이 비롯되었는데, 조국 광복 이후 처음 열린 1946년 1월 29일 해방경축 종합경기대회 동계대회를 전국체육대회와 아울러 제26회 대회로 통산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회 종목도 1948년 대회에 피겨스케이팅이 최초로 추가되어 3개 종목이 되었고, 1954년 제34회 대회에서 대관령 지르메산 슬로프에서 스키 활강 종목이 추가되었다. 이후 1965년 제46회 대회에 재일교포 스키선수 4명이 출전하였고, 1972년 제53회 대회는 태릉선수촌 내 국제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개회식에 각 시·도별 선수단 입장식이 거행되었다.

3년 후인 1975년 제56회 대회에서는 진부령 스키장에서 동계스키대회가 열렸으며, 1981년 제62회 대회에는 재캐나다동포 아이스하키팀이 참가하였다.

대회 종목과 관련하여 1985년 제66회 대회에서 바이애슬론 종목이 추가되어 7개 종목의 대회가 되었고, 1991년 제72회 대회에서는 개회식에 심판선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그리고 1993년 제74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대회 최우수상(MVP)이 신설되었는데, 첫 주인공은 쇼트트랙에 출전한 대구 정화여중 김양희 선수가 차지하였다.

이렇게 대회 종목과 참가선수단 규모에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동계전국체전은 작년까지 101회 대회를 치렀다. 제101회 대회에서의 종목은 정식 종목으로 빙상 3개(스피드, 쇼트트랙, 피겨), 스키 3개(알파인,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 아이스하키, 바이애슬론, 컬링 등 9개 종목에다 시범 종목으로 봅슬레이스켈레톤(스타트), 산악(아이스클라이밍) 등 2개 종목을 합쳐 11개 종목이 되었다. 그리고 참가선수단 규모도 2,797명으로 3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종합순위를 기록한 1986년 제67회 대회부터 2001년 제82회 대회까지 서울이 종합 우승을 독차지하였지만, 2002년 제83회 대회 이후 작년 101회 대회까지는 경기도가 종합우승을 놓치지 않고 있다.

하계 종목에 비해 동계 종목 스포츠가 일반인들의 주목을 덜 받기는 하지만, 동계체전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성장하여 아시아경기대회나 세계 선수권대회로 나아가고, 더욱 발전하여 올림픽 무대로 나아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고 성공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감동과 위안을 얻었다.

비록 올해 예정되었던 제102회 동계 전국체전이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었지만, 오늘도 어디선가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동계체전 선수들의 노력들이 훌륭한 결실로 맺어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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