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정 최재수 서예가 “젊은 분들이 서예에 대한 관심을 가져 ‘추사체’ 명맥 이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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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최재수 서예가 “젊은 분들이 서예에 대한 관심을 가져 ‘추사체’ 명맥 이어져야”
  • 김승현 기자
  • 승인 2020.10.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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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디어뉴스통신=김승현 기자] 추사 김정희는 정조10년(1786년)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높은 벼슬에 오른 선비가 많았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화가 자기 에게 미칠 경우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 많았다. 추사 김정희의 독특한 서체인 추사체는 생원시에 급제했던 24세에 그의 생부 (호조 참판)가 연경으로 갈 때 함께 수행하여 당시 학계를 주름잡던 옹방강,조강,엽지선,완원 등을 만난 추사는 특히 50세 위인 옹방강과 30세 위인 완원을 스승으로 삼고 각별한 지도를 받아 서법의 중심을 이뤘다. 중국 역대 문필가들의 글씨체를 연구하고 그들의 장점을 모아서 자신의 독특한 글씨체를 창출한 것이다. 추사체는 음과 양, 삐뚤고 바른 것, 크고 작은 것, 성글고 빽빽함 등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며 당시의 서체와 구별되는 개성이 강한 서체로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였다.

운정 최재수 서예가
운정 최재수 서예가

현재 추사체의 필법을 계승하고자 40여년을 정갈하게 좌정하여 먹을 갈고 붓을 드는 주인공이 운정 최재수 서예가다. 故 연파 최정수 선생의 조카이자 가산 최영환 선생과 사촌인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어린 시절부터 붓과 서예에 익숙한 일상을 보내며 故 연파 최정수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서예에 입문하였다.

故 연파 최정수 선생은 <연묵천자>, <연파총서>, <연파서집>, <추사체천자문>, <경전>, <연파서징>, <가언집>, <명시선집>, <사언삼백선> 등 다수의 추사체 교본을 집필하였으며 국내 추사체 연구의 일익을 담당한 추사연묵회를 창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숙부님으로부터 처음 서예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추사체에 대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이상으로 어떤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한 중에도 숙부님은 각종 서적을 수집하여 글씨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기억만으로 작품을 만들기 힘들 때에는 사진에 대고 그려가면서 글씨를 연구하시던 열정을 어릴 때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어떻게 보면 이에 감화 받아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선약수 경경위사
상선약수                  경경위사

창안 200년을 앞둔 추사체, 출처와 작자, 필법이 확고히 보존된 추사체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높이 사고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체, ‘추사체’는 추사 선생의 호방함과 한·중을 오가며 익힌 동서고금의 지식, 끝없이 다듬은 필화로 만든 희귀하고 중요한 서예의 서체이다. 그럼에도 중국 본토의 명필서체보다 대중적이지 않고 익히는 데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00년 이상 사장되었던 추사체는 <연묵천자>, <연파총서>, <연파서집>, <추사체천자문>등을 발간하며 한국 추사체발굴에 큰 획을 그은 추사연묵회 창립자 연파 최정수 선생의 손으로 다시 맥을 이어가게 됐다. 연파 선생은 유년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비롯한 한학을 배워, 우연히 본 추사체에 매료돼 전국을 다니며 먹지를 대고 추사체를 복원해 다수의 추사체교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중국 수교 후에는 중국 오체의 대가들도 서체의 성인(서성;書聖)이라는 호로 부를 만큼 추사체에서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연파 선생의 직계 제자인 아들 가산 최영환 선생에 이어, 추사 선생의 고향 예산보다 현재 활동 중인 대전을 추사체의 본부와 같이 활성화시킨 서예인이 연파 선생으로부터 서체를 배운 조카 운정 최재수 서예가이다. 그는 지난 40여 년 간 추사체를 계승하며 한국서화가협회, 중국 대경시서도협회, (사)한국예술문화원 등의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사)추사체연구회 부회장, 한국백제서화작가협회 부회장, 한국추사서예가협회 자문위원, 한중일 문화교류협회 이사 및 연파기념사업회 이사 등 많은 서예협의 임원으로 있다. 남북코리아 민족화합상,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상 등 굵직한 수상경력의 운정 서예가는 올해 국제문화아트페어 단체전에 추사 행서, 예서, 초서를 비롯한 추사체 작품을 소개하며 추사체만의 멋과 매력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올해로 40년 째 서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추사체의 장점으로 다른 서체들에 비해 난이도는 높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각자만의 또 다른 매력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연구의 측면에서 다소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추사체는 강약의 미묘한 조절로 탄생하는 독창적인 미학 때문에 혹자로부터는 ‘추사체는 음양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칭송을 듣기까지 하는 글씨체다.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이 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추사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추사체 예서를 집중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연파 선생과 가산 선생도 추사체 행서와 전서 등을 주로 연구하고 활용하였던 만큼 아직까지 예서를 쓰는 작가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 편인데, 자연히 처음부터 모든 것을 연구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스스로가 추사 선생님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니 서서히 그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으로 처음 초대작가가 되었던 때를 꼽는데 이때 연파 선생은 그에게 “겉넘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초대작가라는 직함을 얻었지만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선생님의 마음을 가슴 속에 품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추사체의 진가를 선보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또 40여년을 추사체를 연구하며 붓을 잡았지만 이제야 추사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예서 분야 외에도 추사체는 작자와 창안 시기,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자 완성도 역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서예의 고향 중국에서도 크게 칭송받는 서체이다. 행서의 대가 연파 선생의 영향으로 추사체를 쓰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그럼에도 감히 시작하기 어려운 글씨이기에 국내에 추사체 인구는 많지 않다. 운정 서예가는 추사 선생의 성정과 혼이 고스란히 담긴 추사체의 훌륭함이 상대적으로 중국 오체를 더 높이 여기는 분위기에 눌려, 지금은 사라진 국전 시절에도 추사체 분야가 아예 없었을 만큼 추사체가 대중화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서체인 추사체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는 그 서법이 난해하여 기존 서예가들이 우수성을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접하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암암리에 서예계에서는 ‘추사체’를 하대하는 분위기도 조성되기도 했다. 운정 최재수 서예가는 “한국의 서단이 기존 중국의 서체에만 집중되어 있고 우리의 고유서체인 추사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낮아 아쉬우며 하대하는 경향까지 있다. 추사체는 모든 서체를 개성 있게 융합한 가장 진보적인 우리나라 고유서체이니 만큼, 정부와 관계기관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라며 “서예를 어릴 때부터 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예서로도 <추사체 천자문>발간을 준비 중에 있다. 문체부와 교육부에서 정식교과 과목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강좌나 동아리, 취미 분야로 서예를 권장하여 자랑스러운 한국의 서체, 추사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또 추사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젊은 분들이 서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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