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붐 세대와 인구절벽

가을이 깊어지면서 거리의 나무들에서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여름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와 여러 차례 몰아친 태풍에도 푸른 칼라를 지켜냈던 나뭇잎들이 계절의 순리를 거스르지 못하며 빛바랜 낙엽으로 변하며 떨어지고 있다.

그렇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베이붐 세대’의 현실을 떠올려 본다.

베이붐 세대는 전쟁이나 혹독한 불경기를 겪은 후 사회적·경제적 안정 속에서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데, 국가별로 그 연령대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부터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말하고, 일본의 경우에는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한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붐 세대라 한다.

우리의 경우 일본 식민치하에서 벗어나자마자 참혹한 6·25 전쟁까지 겪은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고, 자신들 보다 나은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자녀교육에 헌신했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베이붐 세대는 1960년대를 전후하여 태어났기에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전후가 된다.

1962년부터 시작된 수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 경제는 이들의 등장과 활동을 통해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냈다. 가시적으로 우리나라는 1977년 100억달러 수출에 이어 1995년 1천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였다. 경제 뿐만 아니라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에 이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졌다.

이토록 놀라운 경제발전은 1인당 국민소득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편의상 1967년과 2017년 통계를 기준으로 보자면, 필리핀은 207달러(1967년)에서 2,989달러(2017년)로 14.4배 증가, 태국은 같은 시기 167달러에서 6,594달러로 39.5배 증가, 말레이시아 317달러에서 9,945달러로 31.4배 증가,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54달러에서 3,847달러로 71.2배 증가하였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1967년 105달러에서 2017년 29,200달러로 무려 194.7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자료는 2017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자료 참조)

특히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 등 4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일컬어 ‘네 마리 용’이라고 불렀다. 그런 ‘네 마리 용’이 지금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싱가포르는 값싼 수입 노동자의 하층민화, 대만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임금 정체, 홍콩에선 정부와 시민 사이의 갈등 등으로 경제 환경이 녹록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은 이 시기를 통해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어낸 중국의 부상으로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다만,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분야를 선도하며 경제 발전의 고삐를 다잡아가고 있는 현실은 커다란 위안이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리지 않으며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밑바탕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당시 우리나라의 100억 달러 수출,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그리고 경부선 전철화와 서울-부산간 2시간 30분 주파 등과 같은 계획을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계획을 시간을 당겨 초과 달성하였고, 이제는 세계 선진국 대열에 당당하게 자리하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의 주 5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노동조건과는 관계없이 초과근무, 주말근무 등과 같은 여건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개인의 권리 보다는 조직과 사회의 가치를 우선시하였다. 물론 정보와 기술 수준이 놀랍도록 발전한 현재의 생산 시스템을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국가경제에 대한 노력과 헌신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는 베이붐 세대가 이제는 가을 낙엽이 바람에 스러지듯 우리 경제 일선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Harry Dent, 1950~ )가 생산가능연령인 15~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인구절벽’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는 2018년 여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2015년 10월 세계지식인포럼에서 주장했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베이붐 세대가 2018년부터 경제전선에서 물러나는 것과 겹친다.

인구절벽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넘어 생산과 소비의 감소로 이어져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심각한 경제위기를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할 화두이다. 덴트는 인구절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민 촉진과 출산 및 육아 장려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대책은 지금 물러나야 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경제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경제 현장에서 어떻게 더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산 가능 연령을 64세로 제한하지 말고 물리적인 연령을 넘어 활동이 가능한 한 경제 일선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가을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지만, 물러나는 베이붐 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역할로 되살아나는 베이비붐 세대라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낙엽을 보며 베이비붐 세대의 물러남을 생각해 본다
낙엽을 보며 베이비붐 세대의 물러남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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