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2 16:47 (목)
[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20
상태바
[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20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20.10.05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나라를 지켜온 민초(民草)

지난 9월 30일 밤 방송된 한 TV 프로그램에서 가수 나훈아가 정치권을 향해 던진 몇 마디의 발언이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가수 나훈아는 공연 방송 도중 “이 나라는 바로 여러분(국민)이 지켰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압도적 카리스마를 통해 작년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지칠대로 지친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주는 한편으로 쉽게 표출할 수 없는 정치적 메시지를 시원하게 던져 주었다.

그의 표현대로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지켜왔을까.

잠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보자.

먼저 고려시대 최대의 전쟁이었던 몽고와의 항쟁을 살펴보자.

고려 고종 12년(1225년)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피살사건을 계기로 비롯된 몽고의 침략은 고려 고종 18년(1231년)부터 삼별초군의 패망에 이른 고려 원종 14년(1273년)까지 40여년에 걸쳐 일어났다. 전쟁이 일어나자 왕을 비롯한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을 하였고, 몽고군은 한반도 전역을 유린하였다.

그러나 몽고군에 대한 저항은 왕의 피신과 관계없이 한반도 전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중 당시 승려 신분이었던 김윤후는 1232년 용인의 처인성 전투에서 몽고군의 총사령관 살리타이를 처단하였다.

또한 1253년 충주성에서는 몽고군의 대공세에 맞서 일반인과 노비, 백정 신분의 백성들이 목숨 걸고 전투를 벌여 70일간의 항쟁 끝에 몽고군을 물리쳤다.

비록 몽고군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반도 전역에서 백성들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최대의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을 살펴보자.

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침입해온 일본과 벌인 전쟁이다. 당시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부산포를 침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별다른 대비를 못하고 있던 한반도를 손쉽게 휩쓸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왕인 선조는 북쪽 의주까지 피신을 하였고,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양반과 농민, 그리고 노비 등으로 구성된 의병은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 왜병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은 나라의 군대 보다 더 용맹스럽게 왜군에 대항했으며, 실제로 왜군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

경상도 의령의 곽재우, 충청도 금산의 조 헌, 전라도 나주의 김천일, 전라도 담양의 고경명, 함경도 정문부, 경기도 수원의 홍계남 등을 비롯하여 서산대사(묘향산), 사명대사(금강산), 영규(충청도 금산) 등과 같은 승려가 이끄는 승병 들이 왜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빛나는 활약을 했다. 이러한 의병들의 활약에 힘입어 관군들도 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시작하였는데, 진주성에서 김시민 장군, 그리고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 등의 전투가 도드라졌다. 이들 전투에서도 의병들의 협력은 대단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라를 지킨 의병 활동은 구한말 시기에도 이어졌다.

일본에 의한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시작으로 고종 임금의 강제 퇴위, 군대 해산 등의 조치가 취해지며,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지자 의병들이 일어났다. 이 시기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최재형, 이범윤, 이위종, 홍범도, 유인석, 신돌석 등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지역에서 시작하여 두만강 연안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고, 안중근, 엄인섭 등이 이끄는 연해주 의병은 함경도 경흥과 회령 지역에서 일본군과 수차례 교전하기도 하였다.

구한말 시기인 1907년부터 1910년 사이의 의병 투쟁이 매우 격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이 기간중 15만 여명의 봉기가 있었는데, 2,851회의 충돌에 16,700명 사망, 36,770명 부상 등 총 5만 3천 여명의 의병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과 관련한 의병은 아니지만 평범한 백성의 몸으로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낸 안용복이라는 인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693년과 1696년 2차례에 걸쳐 일본을 직접 찾아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제기하였고, 당시 에도 막부로부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서계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례에 걸친 안용복의 도일 활동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서계 논쟁이 일었다. 이 분쟁은 1693년부터 1699년까지 7년간 지속되었는데, 일본측이 울릉도를 포함한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일본 어부들의 독도에서의 어업활동을 영구히 금지시키겠다는 서찰과 차왜(差倭,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보내온 사신)를 보내온 1699년에 종결되었다.

오늘날 독도가 명백한 우리의 영토라는 근거를 남겨준 안용복이라는 인물이 당시 울산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평범한 백성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부에서 코로나 19를 이겨내기 위해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이 바이러스와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국민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 역사상의 전쟁에서 이 땅을 지켜낸 실질적인 사람이 바로 일반 백성들이었다.

비록 코로나 사태가 전세계적인 위기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1등 국민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9월 30일 방송된 가수 나훈아 공연 장면 (KBS2-TV)
9월 30일 방송된 가수 나훈아 공연 장면 (KBS2-TV)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