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2 16:47 (목)
벽암 허한주 서예가 “추사체, 지도자 양성이 많이 되어 추사의 연구영역이 넓어져야”
상태바
벽암 허한주 서예가 “추사체, 지도자 양성이 많이 되어 추사의 연구영역이 넓어져야”
  • 박주환 기자
  • 승인 2020.09.17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서예란 검정의 묵색을 이용하여 지면에 선과 점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점과 선과 획의 태세, 필압의 강약, 운필의 지속과 먹의 농담,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는 조형 예술이다. 서예는 독특한 풍격과 무한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생활환경을 미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성을 배양하고 정조를 도야 양성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서예는 ‘문화의 꽃’으로 우리 인간의 삶과 함께 가꾸어 오면서 언제나 인간 옆에, 그리고 세계 안에 존재해 왔다.

벽암 허안주 서예가
벽암 허한주 서예가

평생을 전통 서도에 매진해 오며 병풍서를 통해 한국의 예술성을 널리 알리는 한 서예가가 있다. 김해를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벽암 허한주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먹과 붓을 가까이 해 온 그는 전통의 방식을 중시하면서도 자신만의 주관적인 통찰을 통해 전통회화의 기법을 더욱더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현대적인 미적 감수성에 부응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절치부심 서도에 매진하고 있다. 허한주 선생은 “글씨란 재주를 부리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덕성을 기르면서 정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올바른 정신으로 무난한 인간 생활을 위해 빠질 수 없는 것이 서예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31년 김해 외동 출신으로 6세 무렵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우기 시작한 선생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천자문 가운데 500자 정도를 제대로 익혔다고 한다. 초·중·고·대학 시절과 김해군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1960년대 후반 이후 교육 공무원으로 전직하고부터 한문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하며 교육 행정직으로 학교에 근무하면서 하루에 꼭 한 시간씩은 서예와 한문 공부를 독학했다. 선생이 서예와 본격적으로 한학에 눈을 뜬 시기는 정년퇴직 이후로 김해에서 서실을 운영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와암 이한우 선생과 향정 류명순 선생으로부터 서예와 한학을 사사했다. 시·서·화에 모두 능한 스승 덕분에 선생의 실력도 이때부터 일취월장했으며 1997년 일본 오이타현에서 열린 국제서예대전인 운룡전에서 ‘왕희지의 난정서’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5월 가야사 연구의 귀한 문헌인 ‘가락국기(駕洛國記)’ 필사본을 김해시에 기증했다. 경상남도 김해시 시 승격 38주년 김해시민의 날 행사에서 제23회 김해시 문화상을 수상한 허한주 선생은 행사 후 허성곤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해당 작품을 기증하며 “물실호기(勿失好機, 결코 잃을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가야사 복원에 미약하나마 붓의 힘을 보태고 싶었다.”는 뜻을 밝혔다. 가로 37cm, 세로 135cm 크기 화선지에 장당 240~250여자가 빼곡하게 적힌 이 작품은 전체 16장 분량에 총 글자 수만 3,991자에 이를 정도의 대작으로 작품 완성까지 약 한 달 정도가 소요될 만큼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완성했다. 평소 구양순체를 골조로 한 역동적이고 선 굵은 필치가 특징인 허한주 선생 특유의 서체가 오롯이 녹아 있어 서예의 맛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벽암 허한주 선생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혼을 불태우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창작미술대전 입선 7회 전국서화예술대전 입선 4회, 특선 1회, 초대작가상 1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4회, 초대작가상 1회 한국서화예술대전 입선 1회, 특선 2회 한국미술제 작품공모전 특선 1회, 한국미술문화협회 서예 특선 1회, 명필 한석봉 서도문화예술대전 특선 2회, 대한민국·성균관 유림서예대전 입선 5회, 특선 1회 대한민국서예대전·대한민국미술대상전 초대작가상 5회 등 다수의 수상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현대미술창작전 은상(1996) 일본 대분현 운용전 대상(오이타현·국제예술제, 1997) 설송문화상(2002), 추사상(2003), 율곡상(2007) 경남예총 공로상(2005) 김해시 문화상(2019) 등을 수상했다. 지난 4월에는 매년 개최되는 가야문화제의 한시백일장에서 차상을 수상했으며, 가훈써주기 봉사 역시 10여년 동안 지속해오고 있다. 특히 충남 예산에 있는 한국서예비림협회의 비림박물관 서화관에도 선생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오는 10월 22일에는 경상남도 문화예술상 수상도 앞두고 있다.

한편 자신의 호를 내건 벽암서당을 개설하여 후진양성을 통한 지역 문화예술저변 확대에 평생을 바쳐온 허한주 선생은 지난 2017년엔 부인의 유지에 따라 (재)김해시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기금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장학기금 1억원을 기탁한 것은 2017년 11월 사별한 아내의 유지와 4남 1녀 자녀들의 효심으로 인한 것. 거기에 아내가 자신 몰래 예금해놓은 3000만 원짜리 예금통장을 보게 됐고 두 돈을 합쳐 ‘평소 배움이 짧은 것을 아쉬워했던’ 아내를 떠올리며 좋은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허한주 선생은 두 돈을 합친 1억400만원으로 우선 김해인재육성장학재단에 아내와 공동 명의로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100만원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100만원은 노인복지회관의 무료급식비에, 100만원은 김해지역 신문이 운영하는 ‘천원밥집’에 기부했다. 선생은 남은 100만원은 아내 장례식 때 찾아준 친구들에게 밥을 샀다고 말했다. 선생은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인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아내도 아주 기뻐할 것”이라며 말했다.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됨과 같다는 말이 있다. “말, 글, 글씨 모두 뇌의 반영이기 때문에 글씨체를 보면, 외모로 알 수 없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는 허한주 선생은 “추사체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지도자들이 많이 양성되어 추사의 연구영역이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정진과 도전으로 일구어내는 희열과 감동이야말로 서예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자 기쁨이라는 허한주 서예가. 그의 한계 없는 도전에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