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디어뉴스통신=김승현 기자]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처음으로 태극기를 사용했는데 그때에는 4괘가 아니라 8괘 태극기였다고 한다. 4괘 태극기가 등장하는 것은 3개월 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고 일본에 수신사로 가는 배 안에서 4괘로 줄여 오늘날과 비슷한 태극기를 만든 것이다. 다음 해(1883)에 태극기는 조선의 정식 국기로 채택됩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신생 대한민국은 1949년 10월에 태극기를 국기로 지정하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는 5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국군의 날과 조의를 표하는 현충일, 국장기간, 국민장일 및 정부지정일에 태극기를 개양한다.

이주동 회장
이주동 회장

이런 가운데 자비를 털어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태극배지를 갖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며 태극기 전도사로 잘 알려진 주인공이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이주동 회장이다. 전 초월읍 농촌지도자 회장이기도 한 그는 지역에 헌신해 온 만큼 남다른 태극기사랑으로 대통령표창, 국회윤리특별위원장상, 광주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 의미 있는 한 순간인 국경일에 태극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태극기를 집에 보유하고 있지 않는 가정도 많다. 또, 태극기의 게양방법 조차도 몰라 과거와 달리 제 각각 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2005년 당시 이장으로 충혼행사를 진행하면서 나라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됐다는 이주동 전 회장은 “나라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찾던 중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가 생각났다. 처음엔 국경일에 마을 도로변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넉넉한 살림이 아님에도 자비를 털어가며 매년 태극기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 이주동 회장은 ‘태극기의 날’이 정식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단체와 기업들이 태극기 스티커와 배지를 배포하며 일상에서 태극기를 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7년이 넘도록 자비로 태극기를 제작해 각종 단체와 기관에 기증하며, ‘태극기전도사’로 불리고 있다. 지금까지 이주동 회장이 보급한 태극기만도 20,000여 장을 훌쩍 넘는다. 2005년 3.1절, 이장을 역임할 당시 살고 있는 마을에 태극기 50장을 보급한 것이 시작이다. 이주동 회장은 “수건은 걸레가 되지만 태극기를 걸레가 될 순 없으니 환갑 답례품으로 준 것인데 신선하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맘에 와 닿아 본격적으로 태극기 보급에 앞장서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환갑날 500장을 시작으로 국경일이면 태극기달기 대형 홍보형 현수막을 달았던 이 전 회장은 초등학교, 지역축제, 현충일, 국경일, 농민의 날, 광주시민의 날, 기념일, 관공서, 노인회, 보훈단체, 택시기사 등 태극기가 필요한 곳이면 나라사랑 태극기를 보급했다.

“베풀고 나누는 정신을 실천하는 대상으로 태극기를 선택했다”는 이주동 회장은 “태극기에는 무궁화와 애국가처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귀한 표식이자, 국내외의 독립운동가들과 호국영령들이 염원해 온 조국의 무한한 영광을 기원하는 건곤감리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사비를 털어 지역 초등학교를 비롯해 택시회사·노인회·복지단체 등에 태극기를 기증하고 현충일엔 지역 충혼탑에서 태극배지 수백개를 나눠주었으며 삼일절엔 택시에 꽂을 수 있는 소형 태극기 수백개를 제작해 기사들에게 전달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태극기사랑운동가 자격으로 받은 광주시장상이 유난히도 보람있고 생각이 많이 난다는 이주동 회장은 그간 태극기 사랑과 국가를 위한 그의 진정성이 알려지면서 스포츠서울 기업브랜드 나라사랑 지역봉사부문, 대한뉴스 대한민국탑리더스상, 시사투데이 ‘자랑스런 한국인대상’을 수상과 지난 4월에는 ‘혁신한국인&POWER KOREA상’ 지역사회발전리더에도 올랐다. 그리고 1983년 정무장관상을 시작으로 경기도지사상, 행정자치부장관상 등 명예로운 상도 15차례나 수상했다.

이주동 회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하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포기하지 않고 태극기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있어야 개인도 국민도 있다. 나라사랑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인 태극기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도 태극기 나눔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겠다”며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자식들에게 특별히 남겨줄 게 없다. 하지만 내 이름 석자를 들으면 많은 이들이 ‘태극기’를 떠올릴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자식들이 자랑스럽지 않겠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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