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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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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14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20.08.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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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일(國恥日)을 잊지 말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강물에 새기라”
이 말은 필자가 평서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하려는 말이다.
좋지 않은 일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지 않은 일을 마음속에 둔다는 것은 분명 좋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할 좋지 않은 일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10년전 우리가 나라를 잃었던 그날이다.
바로 1910년 8월 29일, 경술 국치일이다.
그날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이 땅 한반도가 일본 제국에 병합되어 식민지가 된 날이다. 사실상 국치일은 8월 29일 이전에 준비되어 있었다. 실제로 합방조약은 이미 1910년 8월 22일에 체결되어 있었는데, 일본측에서 일주일 동안 발표를 하지 않다가 8월 29일 순종의 조칙 형태로 발표를 했다. 여기서 조칙이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명령을 뜻한다.
이날 발표된 조칙에는 행정 결재에만 사용하던 옥새(玉璽)가 찍혔을 뿐이고, 당시 대한제국의 국새(國璽)가 찍혀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순종 임금의 서명 조차 없었다. 이는 한일 합방조약이 대한제국의 정식조약이 될 수 없기에 이 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유의해야 할 부분은 조약의 무효가 아니라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합병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하게 그런 작업을 해왔는가에 있다. 당시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잇따라 승리함으로써 일본에 의한 한반도 장악에 방해가 될 거대한 국제 세력을 제거했고, 1904년 한일의정서와 1905년 을사조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또한 1907년 정미7조약으로 행정권 박탈 및 군대 해산, 1909년에는 기유각서로 사법권을 박탈하였고, 1910년 6월에는 경찰권까지 박탈하였다.
결국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할 즈음에는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만 독립국이었을 뿐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일본의 치밀한 사전 작업에는 주목해야할 비밀조약이 있었다. 바로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한국 지배를 서로 묵인하기로 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그것이다. 이 밀약을 체결한 후 일본이 그해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일본의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으로 이루어진 8월 29일 국치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현재 전후 최장수 총리로 재임중인 아베 총리와 일본이라는 국가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평화헌법 개정 의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잊을 수도 없지만 용서할 수도 없는 일본 식민치하 34년 11개월의 세월을 떠올리면서 며칠 후 맞게 될 8월 29일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34년 11개월간의 일본 식민 치하를 끝내기 무섭게 6·25 전쟁이라는 한민족간 처절한 다툼의 상처를 안고 허리띠를 졸라 맸다. 그렇게 노력한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규모면에서 세계 12위권이고, 무역규모면에서는 세계 9위권, 그리고 군사력 측면에서는 세계 7위권에 속하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오른 국가가 되었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대유행중인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보여준 우리의 K-방역은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고도 남음이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8월 29일 국치일.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지만,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새로운 관계 설정이 이루어진다면 저 깊고 푸른 동해 바다 속으로 흘려보낼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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