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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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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정연철 박사의 우리 주변 돌아보기-4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20.06.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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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과 종전-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선전포고 없이 남한을 기습적으로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는 국제전쟁으로 비화되어 1953년 6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간 교전이 이어졌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의하면 6·25 전쟁 기간중 국군 사망자는 13만 7,899명, 국군 부상자는 45만 724명, 그리고 포로는 8,343명이라고 한다. 또한 전쟁 기간중 경찰도 3,131명이 전사했고, 7,084명이 실종되었으며, 6,760명이 부상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참가한 유엔군 피해도 커서 유엔군 사망자는 3만 7,902명으로 이중 미군 사망자가 3만 3,686명이고, 이어서 영국군 1,078명, 터키군 966명, 캐나다군 516명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북한군 지원에 나섰던 중공 인민군 사망자는 14만 8,600명이며, 부상자는 79만 8,4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6·25 전쟁은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생명도 무수히 앗아갔다.

이 전쟁으로 인한 남한 지역 민간인 사망자는 24만 4,663명이며, 이중 남성은 16만 6,104명이고 여성은 7만 8,559명이다.

이토록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휴전은 말 그대로 전쟁 중인 상황에 대하여 전쟁 당사자가 전투 중지에 합의한 것으로 전쟁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6·25 전쟁에 대한 휴전협정은 당시 유엔군 총사령괴이었던 마크 웨인 클라크,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그리고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서명을 하였다. 휴전협정 체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끝까지 통일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서명을 하지 않아 우리는 휴정협정의 당사자가 되지 않았다.

이제 며칠 후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한다.

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휴전상태는 아무런 변화없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북측에 의해 휴전협정 상의 약속이 무수히 깨어졌으며, 최근 들어서는 북한에 의한 무력도발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 범여권 국회의원 173명이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한반도 종전 선언 결의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원론적으로 전쟁의 종결인 종전은 교전국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합의에 의해 휴전조약이 체결되고, 그에 따라 적대행위가 중지되며, 이어서 강화(講和)의 예비교섭을 거쳐 정식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효력이 발생되면 전쟁이 종료되고 평화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이다.

6·25 전쟁 70주년을 며칠 앞두고 여권에서 나온 ‘종전 선언’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본다.

첫째, 종전은 주체는 휴전 당사자이다.

6·25 전쟁은 현재 휴전상태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휴전 당사자가 아니다. 물론 휴전 당사자가 아니므로 종전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교전 당사자였던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종전을 선언한다면 마땅히 효력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종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무력도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만의 종전선언이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종전은 교전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남과 북은 이미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였다. 이로 인하여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였느냐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1991년 12월 13일 합의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에 의하면 합의서 서문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라고 규정하여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정상적인 국가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통해 남과 북이 평화조약까지 절차를 밟게 된다면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이 정상적인 국가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의 휴전선은 더 이상 ‘휴전선’이 아니라 ‘국경선’이 되어야 하며, 통일이라는 기대감은 점점 더 옅어질 수 있다.

셋째, 6·25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제(6월 15일) 보도된 연합뉴스에 의하면 전주시 황방산 일대에서 6·25 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가 상당수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북한으로부터의 유엔군 유해 송환 소식들을 접하기도 한다. 또한 6·25 전쟁으로 인하여 폭발적으로 발생한 이산가족 문제도 있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는 2016년을 기점으로 이산가족의 사망자수가 생존자수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2019년말 기준으로 등록한 남측의 이산가족은 총 13만3,370명이다. 그 중에 사망자수는 8만640명으로서 생존자 5만 2,730명보다 크게 앞서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산가족의 생존자 수 중에서 70대 22.2%, 80대 40.5%, 90세 이상 22.7%로서 고령자수가 절대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전으로 남과 북의 관계가 정상적인 국가간의 관계로 전환된다면 이들 이산가족 문제는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이제 며칠 후면 6·25 70주년을 맞는다.

종전도 중요하지만 남과 북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좀 더 귀기울이고, 우리 만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어떠한 일이라도 북측과 함께 처리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1953. 7. 27 휴전협정 조인식 모습(출처 : 네이버)
1953. 7. 27 휴전협정 조인식 모습(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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