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공공장소에 놓인 미술을 공공미술이라 한다. 수준 높은 공공미술은 많은 이들이 공동으로 마음껏 향유할 수 있고, 사회 구성원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개념을 포함하므로 ‘공공재’라고도 부르며 이러한 공공건축물들은 지자체의 문화정책을 통해 도시 공간개선과 도시 이미지의 정체성을 위해 제작되고 있다. 또한 건축물과 도시 공간, 사람들의 쾌적한 환경, 문화향수의 기대와 맞물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문화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데도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가 건축물 공공미술작품 심의를 강화, ‘심의 장벽’이 크게 높아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7년 80명 이내의 심의위원 풀제에서 20명을 심의위원으로 변경하고, 젊은 작가·신진 작가들에게도 공공조형물 설치에 참여토록 하겠다는 이유 등으로 심의기준을 대폭 변경했다. 최근 심의 선정위원을 새롭게 구성한 경기도 역시 심의 부결률이 매우 높아졌다. 8월 이전에는 가결률이 62.5% 였으나 9월에는 12%, 10월에는 0%로 급락했다. 하지만 공공미술 시장의 예술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심의기준 강화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부결률이 높아지며 젊은 작가와 신진 작가에게 기회가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심사위원 취향의 작가들만 선정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미술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부결 작품이 속출하면서 심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 이에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조각가협회 임원 및 회원들이 지난달 서울 인사동에 모여 심의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서명행사를 가졌으며, 현재는 서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도산위기에 몰린 관련 산업체 종사자들 수천명이 서명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1972년 처음 도입돼 1995년 시행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미술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했고 조형물 작가들에게는 ‘큰 미술시장’을 형성한 바 있다. 건축물미술작품설치제도는 연면적 1만㎡ 이상 신·증축하는 일정한 용도의 건축물은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1%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거나 직접 설치 비용의 일정 비율(7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즉 작가들에게는 창작의 기회를, 대중들에게는 예술작품 향유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인 것.

그러나 서울시와 경기도의 심의에서 부결률이 높아지면서 시장 자체가 축소했다는게 미술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높아진 부결률에 따른 ‘선택적 기금제’의 행방도 묘연하다. 문화예술진흥법 상 작품이 선정되지 않아 미술작품을 설치하지 못하면 해당 금액의 70%를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부결률을 높여 기금으로 받는다는 의혹도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 건축물미술작품 제도로 2011년부터 걷은 기금 300억 원 중 공공미술 사업에 쓴 액수는 그 10%에 불과한 30억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도 있다. 이에 대해 지자체 관계자들은 몇몇 작가들의 독점이 아닌 젊은작가, 신진작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며 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예술성과 공공성,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 엄격하게 심사하다 보니 부결률이 높아진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공공미술작품심의의 높은 부결률로 작가들이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조각가들을 중심으로 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미술계 측은 비구상, 추상적인 작품은 가결수가 높고, 구상작품은 부결수가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심의위원의 주관적인 취향이나 개인의 선호도가 심의에 개입됐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현재와 같은 심의위원 20명 고정제를 예전처럼 풀제(80~100명, 심의는 15~20명)로 해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고 심의위원구성을 ‘건축심의’와 같이 전공자 80%이상(현재는10~20%) 보장, 심의위원의 학력, 지역 형평성 고려한 인력 구성, 심의위원 공개와 작가의 작품설명 기회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에 대해서는 심의위원 선정위원회 구성 및 과정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미술계의 비전공자들로 심의위원을 꾸리다 보니 전문성, 책임성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현장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과거에는 공공조형물과 관련해 여러 부정적 요인들이 없지 않았으나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작가 간 경쟁피티를 통해 좋은 작품을 선발해 건설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회화분야에 비해 작품판매가 저조한 조각 분야는 조형물이 조각가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므로 무더기 부결 및 100%부결 사태는 석공, 금속, 가공,청동주물업 등 관련 산업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한국조각가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공공미술은 세계시장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홍콩, 싱가폴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호텔 등에 한국조각가들의 작품이 설치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러한 시점에서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문화대국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문화예술 분야는 시대적 요구를 실현하는 기본동력이며 핵심이다. 세계경제와 사회또한 문화적 창의성과 상상력이 성장동력이 되고 있으며, 서비스, 예술, 콘텐츠 등 창조산업이 주력산업이 되는 시대로 변화해가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확산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이 세계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더 나은 미술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한국미디어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