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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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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 박사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27
  • 정연철 전문위원
  • 승인 2019.06.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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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의 역할과 호칭 변화

왕조 역사상 세계 최장 및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 왕조는 시조인 혁거세 거서간으로부터 56대 경순왕까지 993년간 이어졌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왕조의 역사를 시작한 고구려는 시조가 동명왕이고, 백제는 온조왕인데 신라는 혁거세왕이 아니라 혁거세 거서간이란 명칭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거서간이란 명칭은 시조인 혁거세에게서만 사용되었고, 제2대 왕은 남해차차웅으로 변경되었다가 제3대 왕부터 제18대 왕까지는 이사금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제19대부터 제22대까지는 마립간이란 명칭으로 변경되었다가 제23대 법흥왕부터 비로소 “왕”이라는 명칭이 부요되고 있다.

이러한 명칭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거서간’이란 명칭으로 부린 혁거세에 대하여 살펴보자.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국가였던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신라지역의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村)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이고,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嘴山) 진지촌(珍支村), 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인데, 이것이 진한(辰韓)의 6부(部)가 되었다.

어느날 고허촌의 우두머리인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蘿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다. 소벌공이 그곳에 가보니 말은 사라지고 큰 알만 남아 있었다. 그 알을 쪼개자 어린 아이가 나왔고, 소벌공은 그 아이를 거두어서 길러주고 이름을 혁거세라 지어주었다.

혁거세의 나이가 10여세에 이르자 남달리 뛰어나고 숙성했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비하다고 존경해오다가, 이때 그를 임금으로 추대했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瓠;호)을 박(朴)이라 불렀는데, 혁거세가 깨고 나온 큰 알이 마치 박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그의 성을 박(朴)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같은 박혁거세의 설화 뒤에 ‘거서간’은 진한의 말(辰言)로 ‘왕’을 뜻하며, ‘고귀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고도 한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삼국유사에도 박혁거세가 태어나서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 비슷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제2대 왕인 남해에게는 ‘차차웅’이란 명칭이 나온다.

남해는 혁거세의 친아들로 신체가 컸고, 성품은 침착하며 지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해는 아버지 혁거세처럼 통치자로서 거서간이라 하지 않고, 차차웅(次次雄)이라고 했는데,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서는 김대문(金大問)의 말을 인용하여 이에 대한 설명을 붙여 놓았다.

차차웅은 신라 말로 ‘무당’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무당은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이 말이 고귀한 사람의 존칭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로 제3대 왕은 ‘이사금(尼師今)’이라 부르고 있다.

남해가 죽자, 태자였던 유리(儒理)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에 대한 호칭은 차차웅이 아니라 ‘이사금’으로 되어 있다.

태자였던 유리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하나의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신라시대 초기에 으뜸 벼슬이었던 대보(大輔) 석탈해(昔脫解)가 덕망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유리가 왕위를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자 탈해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임금 자리는 용렬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이 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이(齒)가 많다고 하니 떡을 깨물어서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시험을 해보았더니 유리의 이빨 자국(齒理)이 많았고, 이 때문에 유리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참고로 유리왕 9년(32년) 봄에 6부의 이름을 바꾸고, 각 부마다 성(姓)을 내려주었다. 양산부를 양부(梁部)로 고치며 성은 이(李), 고허부를 사량부(沙粱部)로 고치며 성은 최(崔), 대수부를 점량부(漸粱部)로 고치며 성은 손(孫), 진지부를 본피부(本彼部)로 고치며 성은 정(鄭), 가리부를 한기부(漢祇部)로 고치며 성은 배(裵), 명활부를 습비부(習比部)로 고치며 성은 설(薛)로 정해주었다고 한다.

제3대 유리이사금에서 시작된 호칭은 제18대 실성이사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제19대 왕부터는 호칭이 ‘마립간(麻立干)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에는 김대문의 말을 인용하며 마립간의 어원을 밝혀주고 있다.

‘마립(麻立)’은 말뚝을 일컫는 방언이다. 관직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는 함조(諴操)를 말뚝으로 표시한 데에서 ‘마립간’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즉 마립간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말뚝’이라는 뜻으로 통치자인 왕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왕에 대한 호칭 변화에 대해 ‘마립간’은 ‘거서간-차차웅-이사금’이 의미하는 ‘지도자’라는 뜻보다는 ‘권력자’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보기도 한다. 나아가 이러한 호칭 변화는 신라의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단순한 상-하 관계에서 지배-복종의 관계로 바뀌는 전환점이 마립간이라는 호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라시대 왕의 명칭은 왕의 지위와 역할을 따라 변화되고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왕의 지위가 높아지고, 역할이 커지고 있는 상황과 연계되고 있다.

우리의 생활도 신라시대 왕의 호칭이 변화되는 것처럼 현재 상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곳으로 넓은 분야로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 생활의 최종 목적지가 ‘왕’이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설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진정으로 의미있는 나날이기를 기대해 본다.

혁거세 거서간의 무덤으로 알려진 오릉 : 사적 제172호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혁거세 거서간의 무덤으로 알려진 오릉 : 사적 제172호 (출처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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