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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선일치’를 추구하며 무극대도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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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선일치’를 추구하며 무극대도를 찾아가다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9.05.28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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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검무 장효선 명인

[한국미디어뉴스통신=박주환 기자] 전통무예라 함은 국내에서 자생되어 체계화되었거나 외부에서 유입되어 국내에서 독창적으로 정형화되고 체계화된 무적 공법ㆍ기법, 격투체계로서 국가적 차원에서 진흥할 전통적,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무예를 말한다. 한국에서 전통무예는 무예이자, 마음수련으로서 중요한 수단으로 자신과의 싸움이자, 극기의 한 방편이었다. 남과의 싸움에서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결국 한국의 전통무예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오욕칠정에 꺼둘리지 않으면서 자신을 극복하는 극기라 볼 수 있다. 전통무예에 있어서 마음수련은 바로 도와 덕으로의 회귀이자 인간 간에 조화를 이끄는 바탕이며 우리의 전통무예수련에서 얻어지는 마음수련은 세계화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 매우 중요한 소통의 방편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59년 전, 동학의 교조인 수운 최제우(1824~1864) 선생은 무극대도의 기쁨을 칼춤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훗날 이름 붙여진 용담검무가 바로 그것. 최제우 선생이 무형적 에너지를 품고 있는 동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유형적 에너지가 있는 검의 기운을 얻어 본인이 깨달은 무극대도를 좀 더 널리 알리고자 1861년 남원 교룡산성 선국사내 은적암에서 8개월 동안 은거하며 검결을 직접 짓고 추었던 용담검무는 외세의 무분별한 침략에 맞서 검이 가지고 있는 상무정신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시작되었고, 검으로 동학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수련하고 동학 교도들에게 가르치던 중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가 관으로부터 역모와 혹세무민했다는 누명을 쓰고 41세인 1864년에 처형당하게 됨으로서 용담검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용담검무는 쾌활하고 부드럽고 강한 무예를 바탕으로 한 춤사위와 지극히 한국적인 멋을 품은 예술적인 선을 가진 목검으로 추는 검무이다. 용담검무는 검무로서의 가치는 물론 상무적 가치와 함께 무예적 기교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신체균형 수련과 함께 정, 중 동의 동작을 함께 수련할 수 있어 폭 넓은 연령층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효용가치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검무가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천되면서 잃어버린 제의적면과 무예적인 면을 그대로 간직한 용담검무는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성과 함께 검무로서의 가치, 무예로서의 가치, 생활체육으로서의 가치 등의 내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통무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효선 관장
장효선 관장

장효선 선생은 동학의 칼춤 ‘용담검무’의 계승자로 고조부 장남진(1817년-1883년, 남원출신), 증조부 장수만(1852년-1931년), 조부 장대성(1877년-1942년)에 이어 부친 장영철(1923년-1980년)으로 이어지던 용담검무를 전수받았다. 고조부인 장남진 선생은 고향인 남원에서 목수일을 했는데 수운 최재우 선생께서 거처하신 은적암을 고쳐드린 게 인연이 돼 검무를 배웠다. 장남진 선생은 목검을 깎아 최재우 선생께 드렸고 최재우 선생이 검무를 고조부께 가르쳐주신 것이 인연이 되어 용담검무가 증조부-조부-부친을 거쳐 장효선 선생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게 됐다. 이후 45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용담검무의 전승과 계승에 매진해온 장 교수는 지난 1990년 서울 정도 600주년을 맞이해 서울 정동극장에서 용담검무를 최초로 공연했으며, 1994년 파고다공원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목검으로 동학의칼춤, 용담검무를 시연, 2000년 용담검무 계승·복원 학술발표회 개최, 2006년 (사)용담검무보존회 설립, 2010년 KBS 다큐멘터리 경술국치 100주년, 전주KBS 공감토크 “결” 2019.남원춘향제 등에 출연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용담검무는 동학의 근본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장효선 선생은 “철이 없었을 때는 재미로 시작한 검무였지만 이제 인생이 됐다. 어린나이에 검무를 배웠지만 1970년대에는 비교적 틀이 잡히는 형태를 갖추었고 1980년 부친의 타계 후 사명감을 가지고 용담검무의 계승에 매진하고 있다”며 “동학의칼춤 용담검무의 원형을 지키고 보존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용담검무의 근본은 동학이다. 동학의 근본정신은 인내천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평등과 세계평화 이다. 이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으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의미”라고 역설했다.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을 위해 (주)한빛예무단을 창단해 전통문화공연단체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한 장 선생은 계백장군, 온달장군, 광개토대왕 등 역사인물들을 검무극으로 35여 년간 줄기차게 재현해 왔다. 그동안의 무대공연 횟수가 1천여 회에 이를 정도이며 서울정도 600주년을 맞은 1990년에 서울 정동극장에서 용담검무를 최초로 공연한 데 이어 2000년 용담검무 계승·복원 학술발표회 개최, 2006년 사)용담검무보존회 설립, 2010년 KBS 다큐멘터리 경술국치 100주년 출연 등의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용담검무가 자신의 영혼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하는 장효선 선생은 “지난 IMF때 포기하느냐, 계속 이 길을 가느냐의 힘든 선택의 기로에 있기도 하였다. 2004년 홀로 쓸쓸히 포기할까 마음먹었던 시절, 용담검무보존회 창립 계기로 용기와 희망을 찾았고 그때부터 동영상. 교육자료 등을 심혈을 기울여 만들면서 용담검무는 내 삶의 사명감’이 됐다.”라고 전했다.

 

장효선 선생은 용담검무의 정신과 기법을 저서인 <달 품은 용천검-용담검무>과 자전소설 <무심(武心)> 등을 통해 정리했으며, 지난 2015년에는 <용담검무의 춤사위와 검결의 문화적 가치에 관한 연구>로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달품은 용천검 용담검무』에는 동학 천도교 교주인 ‘수운 최제우’ 선생이 추던 칼춤의 복원ㆍ재현과 저자가 부친으로부터 전수받은 검무 동작들로 구성돼 있다. 장효선 선생은 “용담검무가 예술로 승화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선 호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코로 충분히 들이 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자연호흡은 몸과 검이 좌우로 회전하거나 연속동작을 할 때 사용한다. 강한 힘을 내는 동작에선 양의 호흡을 한다. 이 호흡은 코로 충분히 들이 마신 뒤 3분의1을 입으로 내쉼과 동시에 단전을 등 쪽으로 끌어 당기며 호흡을 멈추면 강한 기운이 단전에 모인다.”고 말했다.

장효선 선생은 용담검무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련하기 위하여 한 단계 더 진전시킨 검예도를 1987년 창안하기도 했다. 강화된 한국적 수련법으로 자아를 일깨우고 인격을 완성하는 ‘검선일치’를 추구하며 검무의 무예성과 예술성, 건강성을 한데 모아 용천검이 꿈꾸는 무극대도를 찾기 위해서다. 현재 한빛예무단 대표, 한국검예도협회 회장, 세계검예도연맹 총재, 용담검무보존회 회장, 세계태극기공연맹 총재 등을 역임하고 있는 장효선 교수는 용담검무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전북지역과 동학의 본고장인 남원을 중심으로 미국 뉴욕에도 용담검무전수관과 지회를 운영하며 용담검무를 전수하고 있다. 특히 용담검무 전수자 양성 교육을 위해 용담검무전수관 남원지회를 열고 50여 명의 전수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황토현동학축제 등 축제와 천도교 행사,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파키스탄, 이탈리아 등에 용담검무를 소개하며 민족문화유산의 자긍심을 제고하고 있는 장효선 선생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민건강문화대상, 검예도 단체 종합우승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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